『최영진 대기자의 현안진단』
과열국면으로 치닫던 아파트 분양시장에 찬서리가 내렸다.
정부가 3일 청약 1순위 대상을 대폭 축소하는 한편 분양권 전매를 제한하는 부동산 대책을 내 놓아서 그렇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이른바 ‘강남 4구’와 과천지역에서 분양되는 모든 아파트는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친 후에야 되팔 수 있게 했다. 분양권 상태에서의 거래가 전면 중단된다는 의미다. 공공택지는 물론 재건축이나 재개발과 같은 민간택지에 짓는 아파트도 다 해당된다.
강남4구를 제외한 서울의 다른 지역과 경기도 성남시는 공공택지 분양 분에 한해 소유권 등기 전까지는 전매가 금지된다. 다만 민간택지는 계약 후 1년6개월 지나야 분양권 전매가 허용된다.
그렇다면 분양권 전매 자체가 금지되면 어떻게 될까.
가수요가 대거 사라질게 뻔하다. 분양권 전매를 통한 시세차익이 불가능하니 그렇지 않겠는가.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은 소유권 등기를 하고 집을 팔아야 한다. 분양권 전매라는 말은 사라진다.
그러나 일단 분양권을 팔고 나중 분양받은 사람 명으로 등기를 마친 뒤 집을 넘기는 방법이 동원될 수 있다. 급한 사람이야 이렇게라도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위례신도시를 비롯한 주요 지역의 보금자리주택은 이런 식으로 전매가 이뤄졌다. 불법이지만 암암리에 중개업소 주선으로 분양권이 전매돼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주변 감시가 많아 예전같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튼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는 지역은 소유권 이전에 따른 등기비용도 들어가고 매각 때 중개수수료도 엄청 높아진다. 분양권 상태로 팔 때는 프리미엄 가격을 기준으로 수수료를 내지만 완공 주택은 집값에 따라 요율이 정해진다.
게다가 분양권 상태로 전매할 때는 집 소유 흔적이 전혀 남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단 당첨만 되면 웃돈을 붙여 되파는 재테크를 선호했다. 특히 유주택자의 경우 2주택 불이익 등을 감안해 분양권 상태로 전매하는 일이 많았다.
전매 제한 기간이 길어졌다 해도 공사도중에 분양권 전매가 가능한 경우 수요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다. 계약금 10%만 내면 건설사가 은행에서 집단대출 형태로 중도금을 해결하기 때문에 계약자 입장에서는 달라질게 없다. 초기에 분양권을 팔아 그 돈을 활용해야 하는 급박한 처지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중도금 대출이 무이자가 아닌 유이자 조건으로 대출이 이뤄졌다면 상황은 좀 달라진다. 지금같은 분위기라면 갈수록 웃돈이 떨어질 여지가 많아 전매 제한 기간이 길어진 만큼 이자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전매 제한기간이 끝나 분양권을 팔 때 그동안 불어난 이자만큼 웃돈에서 공제해달는 요구도 있을 게다. 프리미엄이 형성되지 않은 단지는 거래금액을 깎아 줘야 할지도 모른다.
분양권 전매 제한이 강화되면 중개업소에서 분양권을 매집하는 행위가 많이 사라질듯 싶다. 호황 장세에서는 중개업소가 싼값에 분양권을 대량 사들였다가 비싸게 되파는 분양권 장사가 성행했었다.
청약 1순위 대상이 축소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정부의 규제 내용을 보면 세대주에게만 청약 1순위 자격이 주어지고 세대주라도 5년 내 당첨 사실이 있으면 1순위에서 배제된다. 2주택 이상 소유자도 1순위에서 제외된다. 식구 가운데 청약관련 저축에 가입한 상태라도 세대주가 아니면 1순위 청약이 안된다는 소리다.
이렇게 되면 청약통장 해약 사태가 대거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청약 과열 현상도 사라질 게 분명하다. 청약과열은 분양권 웃돈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경쟁률이 치열할수록 웃돈은 더 치솟았다.
청약과열은 1순위 통장이 넘쳐나서 벌어진 일이다.
미성년자라도 청약통장 개설이 가능해 1순위자가 9월 현재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의 경우 1029만 명이고 청약저축 가입자는 56만5000명이다. 서울만 해도 종합저축 1순위가 284만 명에 이른다. 청약저축 1순위도 24만9000명이다.2순위까지 치면 청약관련 저축가입자수가 1958만6000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약 40%가 청약통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정책을 만들어 놓았으니 주택시장이 제대로 가동될리가 없다.
이런 1순위자 중에서 10%만 청약대열에 합류했다고 가정을 해보자. 아파트 분양현장이 과열이 안되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분양 과열을 통해 투기를 부추긴 장본인은 정부인 셈이다.
이 많은 청약자들은 과연 실수요자였을까. 아마 대부분이 분양권 전매를 통해 시세차익을 노리려는 가수요가 아니었나 싶다.
가수요 덕에 주택업체들은 분양가를 한없이 올릴 수 있었다. 값을 올려도 서로 집을 사려고 하는데 누가 안 올리겠는가. 그동안 주택업체들 아파트 장사로 정말 돈 많이 벌었다.
정부의 주택시장 규제 대책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 서울을 비롯한 일부 인기지역 외는 이미 공급 과잉 후유증으로 위축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이 심화되면 서울권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런 시점에 규제책을 내 놓았으니 시장은 급속히 냉각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서울 강남 인기지역 아파트 분양가 인상바람은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1순위 대상을 제한했더라도 분양에는 별 영향이 없다. 설령 1순위에서 미달되더라도 2,3순위자가 서로 차지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재건축은 전체 건설 물량의 3분의 2 이상이 조합원 분이어서 미분양이 좀 생기더라도 문제될 게 없다.
일반 분양분이 다 미분양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조합원 분만으로 공사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공사대금은 조합원 분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분양이 생기더라도 공사 도중에 다 팔리게 돼 있다.
재건축 분양가 올라가면 위치가 좋은 기존 아파트값도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서울은 당분간 잇따른 재건축으로 철거되는 집이 많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 아닌가.
집값이 계속 오를 여지가 많다는 의미다.
진작에 분양가 상한제 적용해 천정부지로 치솟는 분양가를 제어했어야 했다. 침체기에 풀어 줬으면 과열기에는 다시 묶어야 정상 아닌가.
청약 1순위 대상을 줄이고 분양권 전매를 제한한다 해도 1%대 저축금리 시대에서는 돈이 부동산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임대용으로 돈 많은 사람이 집을 계속 사들일 것이라는 뜻이다.
2014년 기준 전체 근로자 1668만 여명의 3.2%인 52만6000여 명이 연봉 1억원 이상자였다. 서울에는 22만7000여 명이나 된다.
이들 고액 연봉자 중에서 대기업 임원 출신은 모아 둔 여유자금이 상당하다. 이들 가운데 아파트와 같은 주택을 사들여 임대사업을 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동안 분양권 전매가 활발했던 것도 이들 여유계층이 사줬기 때문이다. 공급 과잉으로 주택이 남아돌아도 사주는 사람이 계속 생기면 분양을 잘 될 수밖에 없다.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여윳돈을 은행에 넣을 수도 없고 주식 투자도 망서려지는 상황이니 안전 자산으로 불리는 부동산으로 돈이 흘러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자금여력이 있는 기업에서부터 남의 돈을 굴리는 금융권과 부동산펀드·리츠 등의 엄청난 부동산 투자 자금이 대기하고 있다. 그만큼 부동산 수요는 풍성하다는 뜻이다.
공급이 너무 많아 빈집이 속출하고 집값이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이러한 부동산 수요는 없어지지 않는다.
특히 서울 강남권을 비롯한 대도시 중심권 부동산과 같은 안정적인 상품의 수요기반은 건재할 것이라는 소리다.
그래서 이번 조치에 다주택자에 대한 제한이 빠진 게 흠이다. 주택으로만 몰리는 투자 수요는 좀 억제할 필요가 있다. 다들 부동산에 돈을 묻어 놓으려 할 테니 불경기에도 특정지역의 집값은 오르게 돼 있다.
아마 이번 조치로 서서히 냉각되고 이는 수도권 외곽지역만 직격탄을 맞지 않을까 싶다.
특정 집단에 부가 편중되는 것도 문제지만 일부 부유층이 주택을 대량 소유하게 될 경우 더 큰 부작용을 생길 수 있다.
자본이 주택시장을 장악하면 가격 하락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과점기업이 시장을 컨트롤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