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세상엔 남보다 못한 형제도 많고, 원수가 된 자매도 흔하다. 신라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에는 ‘한 가지에 났지만 가는 곳을 모른다’는 안타까운 말이 있는데, 원수는 가는 곳을 모르는 게 아니라 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게 형제를 보내버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국가 원수가 뭐야?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원수야?”라고 묻는 어린 딸에게 “아니, 국가 원수가 아니라 국가의 원수야”라고 대답한 아빠가 있다. 몇 년 전 그 우스개를 들었을 때 좀 심하다 싶었는데, 요즘 상황을 보면 그렇게 말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무렵 박 대통령의 동생 지만 씨가 “피보다 진한 물이 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지금 그놈의 ‘피보다 진한 물’에 큰 재앙을 만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당연히 형제는 분노와 실망이 더하겠지. 1979년 10월 아버지가 서거한 뒤 1981년 성북동으로 이사한 박근혜 대통령은 외로웠다. 그 시절에 최태민 씨 일가가 본격적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1990년에 박근령 씨는 동생 지만 씨와 함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 언니가 최 씨에게 속고 있으니 구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딸 최순실에게까지 포로가 되고 말았다.
박근령 씨의 남편 신동욱 씨의 방송 인터뷰가 재미있다. 요약하면 그들은 추울 때 바람을 막아주는 옷으로 박 대통령에게 다가가 어느 순간 피부가 되더니 나중엔 오장육부가 됐다. 그는 박 대통령이 1980년 청와대를 나서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위로금 6억 원은 강남의 아파트 300채 가격이었다고 주장했다. 박근령-지만 남매가 받은 아파트 외에 나머지 298채는 어디로 갔는가? 그는 이 돈이 최태민 일가가 부를 축적한 종잣돈이 됐을 거라며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산이 문제가 아니다. 신학생시국연석회의의 시국선언문이 지적한 대로 박근혜 체제에 귀신이 들려 있는 게 더 문제다. 선언문은 “어느 한쪽이 헌금으로 인한 축복을 누리는 동안 어느 한쪽이 죽임을 당하는 체제를 인신공양의 사교라고 부른다”고 지적했다. 대기업들이 헌금의 응답으로 세제 혜택, 규제 완화와 같은 축복을 받을 때 어떤 국민들은 물에 빠져 죽고, 어떤 국민은 물대포를 맞고 죽었다. 대통령의 가슴속에서는 형제도 국민도 사라졌다. 아니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린이들에게는 왜 ‘머리 어깨 무릎 발’ 놀이를 가르칠까. 머리로 무언가 생각하고 어깨로 무언가 짊어지고 발로는 행동을 하는데 무릎으로는 뭘 하라는 것일까? 무릎을 꿇는 걸 가르치려는 것일까? 무릎 대신에 가슴을 넣어야 하지 않을까?
박 대통령이 누군가와 한판 붙으려고 하는 걸 사람들이 뜯어말리는 듯한 사진이 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꼭 그렇게 보여서 ‘너네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라는 제목이 붙었다. 박 대통령은 4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또 사과를 하고 검찰수사를 자청했다. 그러나 지금도 가슴속은 그대로인 거 아닐까? 인간적으로는 앞으로 ‘피보다 진한 물보다 더 진한 피’가 가슴속에 들어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