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가 지난 2일 정유라(20) 씨를 퇴학시키기로 결정했다. 박근혜 대통령 뒤에서 수많은 이권을 취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순실(60) 씨의 딸이다. 정 씨는 대학입학 면접 당시 심사에 반영할 수 없었던 대회에서 취득한 금메달을 꺼내 합격에 유리하게 이용했다. 입학 후에는 출석도 거의 하지 않았다. 숱한 밤을 새우며 공부한 수험생과 새벽 내 뜬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본 학부모의 심장을 제대로 찔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의혹에도 ‘진짜 문제’만큼이나 자격 없는 금메달에 덴 대중의 트라우마가 섞였다. 전문가들은 뜨거운 분노를 걷어내고 이성적으로 보자며 논점을 바로 잡고 있다. 합병 비율은 적법했고,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은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시행령 제176조의5 제1항을 보면 당시 합병 비율은 적법하게 산정됐다. 그러나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기를 들었던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법에서 정한 대로만 합병 비율을 정하도록 한 조항이 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적법할 뿐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 금융위원회도 2013년 8월과 2014년 12월 두 차례에 걸쳐 합병 당사자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일부 개정을 진행했다. 2009년 자본시장법 도입 후 4년간은 ‘최근일·1주·1개월 종가를 산술평균한 가격’이 합병 가액 산정 공식이었다. 그러나 2013년에는 산술평균한 가격의 10% 범위에서 할인 또는 할증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2014년에는 그 폭을 30%로 확대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가액 산정의 자율성을 높여 합병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지난해 제일모직 주가가 지주회사 가능성, 자회사 상장 기대감 등으로 고평가됐다는 분석도 많았던 만큼 앞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주가보다 주당순자산가치 등 다른 지표를 더 신뢰하게 되면 법은 바뀔 수 있다.
두 회사 합병 후 삼성그룹 ‘지배구조 안정화’의 수혜로 국민연금이 이득을 본 점은 더욱 뜨겁게 분석해 볼 부분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일 기준 국민연금은 삼성그룹 계열 상장사 11곳에서 지분을 5% 이상씩 보유한 핵심 주주다. 국민연금의 전체 투자 금액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가까이 상승하는 추세다.
기업 경영성과를 평가하는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투자한 30대 그룹(상장사 179곳)의 올 상반기 주식 평가액 증가분 4조8000억 원 중 56%가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나왔다. 앞으로도 삼성을 위한 선택이 국민연금에, 국민에게 이득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합병 결정이 옳았다는 국민연금의 주장은 삼성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면접장에 들어선 위치에 있다는 점을 더 여실히 드러낸다.
삼성이 최순실 일가에 뇌물을 주고 국민연금에서 합병 찬성표를 얻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다달이 국민의 월급에서 떼어 조성된 연금이 특정 기업에 유리하게 쓰이는 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실세’를 가장한 새 방패를 내세워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될 것이다.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확립을 위한 인수·합병은 어떤 기준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550조 원 국민연금이 삼성그룹 주가에 명운을 건 현실이 올바른지, 녹슨 구조를 흔들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