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투데이] 월가 ‘비이성적 과열’ 논쟁

입력 2016-12-06 12:48 수정 2016-12-0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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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권가에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여부를 놓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12월 5일(현지시간) 다우지수가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사상최고치(종가기준)를 10번 째 경신하는 등 뉴욕증시의 신기록 행진이 이어지자 경계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닷컴 버블을 경고하면서 ‘비이성적 과열’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이 바로 20년 전 오늘이라 데자뷰(기시감)마저 느끼게 하고 있다.

미국 증시 과열 여부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나 비이성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그 근거로 정상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은 주가수익비율(PER)을 들고 있다. 뉴욕증시의 대표 지수인 S&P 500의 PER가 최근 주가 상승으로 25를 넘어섰지만 과열을 가늠하는 기준인 30에는 못 미치기 때문이다.

경기상승세가 지속되면 기업의 수익구조가 개선되면서 PER가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았던 인터넷 등 기술주 중심으로 지수가 급등했던 1990년대 말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경제성장률, 실업률 등 주요 경제지표가 경기상승세를 예고하고 있는데다 재정투자확대와 감세를 앞세운 트럼프 신정부의 경기부양정책까지 감안하면 대통령 선거 이후의 주가 상승세는 ‘이성적’이라는 주장이다. 에디 엘펜베인(Eddy Elfenbein) 크로싱 월스트리트 블로그 편집인은 “90년대 말처럼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신규 상장(IPO)이 이루어지는 현상도 나타나지 않고 대선 이후 S&P 500 지수 상승률도 2.5% 정도라 비이성적이라 할 정도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여기에다 골드만삭스, UBS 등 주요 투자은행들이 내년에는 미국 경제성장률이 3%를 훌쩍 넘어서면서 주가는 5% 이상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보고서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주가상승세에 대한 기대치가 오히려 높아지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90년대 말에 ‘닷컴 버블’이 있었다면 요즘은 ‘제조·금융 버블’이 생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체 PER나 지수로는 과열이라 단정지을 수 없지만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일부 주식이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시황이 문제라는 것. 지난 11월 중 다우지수가 1200 포인트나 오른 것도 4개 대형주 덕분이란 분석이다. 4개 주식의 지수 상승기여율이 50%를 넘었으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트럼프 신정부의 요직에 임원들이 대거 발탁된 골드만삭스가 대표적인 예다.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11월 한 달 동안 26.5%나 올라 다우지수를 320% 포인트나 끌어올렸다. 여기에 헬스케어와 제조업 대표주인 유나이티드헬스와 캐터필러가 다우지수를 각각 150% 및 95% 포인트 끌어올렸고 JP모간도 90% 포인트나 기여했다. 이처럼 상승세를 주도한 몇몇 주식을 들여다보면 실적이 그만큼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금융규제완화, 제조업 부활, 전국민 의료보험제 폐지 등과 같은 트럼프 신정부의 공약에 편승해 일부 업종의 주가가 폭등한 점이 ‘닷컴 버블’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한 정책이 의회의 반대 등으로인해 원활히 추진되지 않을 경우 닷컴 버블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거품이 꺼질 수밖에 없으니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트럼프 랠리에도 애플이나 아마존과 같이 실적이 뒷받침되는 주식이 약세를 보인 것도 닷컴 버블 때와 닮은 점이다.

“시세가 급등할 때 사람들은 언제나 이를 합리화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가 그의 명저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에서 근거 없는 낙관론을 경계하면서 던진 교훈이다. 월가 사람들은 이 교훈을 되새기는 듯 ‘비이성적 과열’ 논쟁을 통해 낙관론의 근거를 점검하고 있다. 그리스펀 전 FRB 의장이 지난 1996년 ‘비이성적 과열’을 경고한 후 3년 뒤 증시가 붕괴한 것처럼 증시붕괴의 역사가 반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 경제는 버블을 우려할 정도로 활기를 되찾고 있는데 우리 경제는 바닥을 모르고 가라앉고 있으니 월가의 '비이성적 과열' 논쟁이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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