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조립하는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업체 혼하이는 지난해 3888억 엔(약 3조9700억 원)에 104년 역사의 일본 가전업체 샤프를 인수했다. 애플과 소니 닌텐도 등을 고객으로 두고 있지만 위탁생산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로 낮은 수익성과 성장 잠재력 약화에 직면하자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궈 회장은 “수십년 간 브랜드를 구축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샤프를 활용해 혼하이를 존경받는 하이테크 가전제품 혁신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다.
샤프 브랜드를 되살리고자 혼하이는 샤프가 인수되기 전 자금 조달을 위해 다른 업체에 매각했던 브랜드 사용권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샤프 브랜드를 붙이고 유럽에서 TV를 판매하는 슬로바키아 중견 가전업체 UMC를 약 100억 엔에 인수했다.
샤프의 LCD 패널 사업부가 최근 최대 고객인 삼성전자와 결별을 선언한 것도 자사 브랜드 TV 판매를 위한 패널 확보 의도에서였다. 혼하이는 샤프 기술을 활용해 중국 광저우에 88억 달러를 들여 TV용 평면 패널 공장도 건설할 계획이다.
그러나 과거 샤프가 미국 TV 브랜드 사용권을 중국 하이센스에 판 것이 궈 회장의 장기 전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궈 회장의 오른팔이자 현재 샤프 사장인 다이정우는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하이센스와의 계약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하이센스의 샤프 브랜드 사용권 계약은 2020년에 만료된다. 다이 사장은 “샤프 브랜드를 완전히 통제하고자 한다”며 “이는 공기청정기와 전기밥솥 등 일본에서 주로 판매되는 샤프 브랜드 제품을 해외로 확산시키기 위한 장기 전략의 첫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이센스는 브랜드를 팔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랜 린 하이센스 제너럴매니저는 WSJ에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의 라이선스 계약을 지켜야 한다”며 “샤프 브랜드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확산으로 TV는 전자업체 입장에서 더는 큰 이익을 낼 수 없는 아이템이다. 그러나 소니 TV 부문에서 일한 오사나이 아쓰시 와세다대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TV는 거실 중앙에 있어 소비자들이 브랜드명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마케팅 도구”라고 설명했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 다른 일본 업체도 이런 이유에서 여전히 미국에서 TV를 판매하고 있다. 현지 시장을 확대하려는 하이센스 입장에서도 샤프의 브랜드 파워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이센스는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소비자가전쇼(CES) 2017’에서도 샤프 브랜드 TV를 선보인다.
전문가들은 하이센스가 처음에 샤프 브랜드를 활용해 미국 대형 전자제품 소매업체와의 관계를 구축하고 마케팅 노하우를 쌓은 뒤 최종적으로 자사 브랜드 제품을 판매할 수 있어 혼하이에 새로운 도전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