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항거한 이육사(1904.4.4 ~ 1944.1.16.) 시인의 ‘광야’는 이렇게 첫 구절을 시작합니다.
병신(丙申)년을 보내고 정유(丁酉)년을 맞았습니다. 사실 닭은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액운을 물리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인류와 친근한 가축입니다. 제일 먼저 일어나 높은 곳에 올라가 목청을 길게 뽑으며 새벽을 열죠. 여명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는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개벽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병신년과 정유년은 둘 다 ‘붉은색’을 지닌 해입니다.
지난해도 시작할 때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지요. 이유는 붉은색을 나타내는 ‘병(丙)’은 양의 기운이 충만해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좋은 해로 꼽히기 때문이죠. 무엇이든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양의 기운이 너무 강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죠. 재주만 믿다가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는 게 바로 원숭이니까요.
그런데 한국이 바로 그 꼴이 났습니다. ‘비선실세’ 중심에 선 ‘최순실 게이트’ 때문입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심판대로까지 이끌어내며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악(惡)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희대의 사건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계 경제가 불안한 가운데 우리 국민들이 똘똘 뭉쳐 난관을 헤쳐 나가도 모자랄 판에 ‘최순실 국정농단’에 휘말려 하루 24시간을 매일매일 낭비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얘깁니다.
설상가상으로 12년 만에 돌아온 닭의 해를 맞았지만 닭이 없습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전국의 닭 농가와 닭들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붉은 닭’의 해에 큰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최순실 게이트’와 ‘AI’가 하루빨리 종식되길 말입니다.
닭이 인류와 함께 해온 세월은 대략 7000년쯤으로 보고 있습니다. 닭은 12지 중의 10번째 동물이자 유일한 새입니다. 한자로 ‘유(酉)’라고 씁니다. 특히 닭은 무속신화나 건국신화에서 그 울음소리는 천지개벽이나 국부(國父)의 탄생을 알리는 태초의 소리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국 맹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양주(楊朱)가 ‘닭은 오덕(五德)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이 그것입니다. 닭의 벼슬 즉 관(冠)은 문(文)을, 며느리발톱은 싸움의 무기니 무(武)를 나타내고, 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기백은 용(勇)이며, 먹이를 발견하면 꼭꼭거려 모두 불러 모으는 것은 인(仁)이며, 그리고 때를 맞춰 울어서 새 시간, 새 세상이 밝아 오는 것을 알려주는 믿음은 신(信)이라 합니다.
이렇게 덕성스러운 동물이어서 옛 선인들은 출세하려면 닭 그림을 곁에 두라 했지요. 조선시대 때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의 그림을 걸어 두었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닭 그림을 집 안에 거는 집이 별로 없지만, 닭이 입신출세(立身出世)와 부귀공명(富貴功名)을 불러온다고 믿었던 것은 사실인가 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면 이런 닭의 깊은 속뜻보다는 닭은 그저 ‘치맥(치킨과 맥주)’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는 속담도 있죠. 아마도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속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머리 나쁜 사람을 가리켜 흔히 ‘닭대가리’라고 부릅니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사람들을 불러 국회 청문회를 가졌습니다. 결과야 어떻든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해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윤선 문체부 장관 등 증인들 대부분은 시종일관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 ‘관련이 없다’고 발뺌을 했습니다. 아니, 닭대가리도 아니고 왜 모두 모른다고 했을까요. 결국 이 사건 연루자들은 특검 조사를 받게 됐고, 하나둘 진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증인들을 모아 닭과 지능지수(IQ) 대결이라도 해보면 속 시원한 답을 내놓을까요.
만물과 영혼을 깨우는 희망의 메신저인 ‘붉은 닭’과 함께 꿈꾸던 소망을 올해는 꼭 이루시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