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칼럼] 영혼 없는 경제정책

입력 2017-01-13 10:48 수정 2017-01-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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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겸임교수, 전 고려대 총장

정부의 올해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논란이 많다. 정부는 경제운영의 초점을 위기관리에 맞춰 재정지출을 최대한 앞당길 예정이다. 정부 예산의 조기 집행 6조 원, 공공기관의 투자 확대 7조 원, 정책금융기관의 자금 공급 8조 원 등의 재정 보강을 1분기에 추진하여 경제가 위기에 빠지는 것을 서둘러 막을 방침이다. 가계부채 부도, 보호무역 강화 등 대내외 악재가 연초에 집중하여 경제불안이 심각한 상황을 감안할 때 정부의 정책방향은 옳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보강 정책이 경제위기를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위기는 경기순환적인 위기가 아니라 주력 산업들이 무너져 공급체제가 와해하고 동시에 수출과 내수가 감소하여 수요기반이 추락하는 구조적 붕괴 위기이다. 따라서 자금 흐름이 기업 투자와 창업 그리고 소비로 흐르는 경제구조 개혁이 없으면 정부의 팽창정책은 경제를 더 부실하게 만들어 부도를 재촉할 수 있다.

정부가 제시한 재정보강 정책의 주요 내용은 노후 경유차 교체 시 세제 지원, 농수축산 소비 촉진, 부부에 대한 세금 감면, 신혼가정 전세자금에 대한 우대금리 적용 등이다. 이러한 임기응변적 경기부양책은 정부가 지난 4년 동안 펴온 단순 정책을 반복하는 것이다. 산업 전반이 국제 경쟁력을 잃어 붕괴 위기를 맞았는데 정부는 자금을 계속 투입하고 있다. 이를 위해 4년 연속 추경을 편성하는 기록까지 낳았다. 펌프 자체가 고장 난 상태에서 마중물만 퍼붓는 격이다. 그 결과 국가 부채를 늘려 정부, 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부실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가 성장동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동반 부도의 재앙을 겪을 위험성이 크다. 2015년 우리 경제성장률은 2.6%를 기록했다. 2016년 경제성장률은 2.7%로 추정된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6%로 낮춰 잡아 3년 연속 2%의 저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사상 최악의 결과이다. 보통 위험한 상황이 아니다.

대외 악재의 쓰나미에 휩쓸려 경제가 머지않아 파국의 위기에 휩싸일 수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중국 기업들의 위협이다. 기술, 가격 등의 경쟁력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목을 죄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주도하던 대기업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다. 여기에 사드 배치에 대한 반발로 경제 보복을 확대하고 있어 설상가상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이 우리나라 산업 붕괴의 뇌관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 경제를 해치는 일은 무조건 막겠다는 것이다.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포드, 지엠 등 미국 주요 자동차 회사의 멕시코 공장 건설과 이전을 막았다. 심지어 일본 도요타 자동차에 대해 멕시코 대신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같은 차원의 통상 압력을 가할 경우 우리 경제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미국과 중국이 경제패권을 놓고 무역전쟁을 벌일 경우 우리나라 산업은 진퇴양난의 덫에 걸린다. 이와 함께 브렉시트, 환율전쟁 등으로 외국 자본이 나가고 금리가 오를 경우 우리 경제는 가계부채의 부도, 부실 기업의 붕괴로 금융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최순실 사태가 빚은 정국 불안이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대통령 탄핵, 정권 교체 등의 정치 소용돌이에 빠져 경제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문제는 경제의 중심을 잡아야 할 정부가 시한부의 운명에 처해 영혼이 없는 정책만 되뇌고 있는 것이다. 백척간두의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올해 정책방향은 경제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경제위기를 오히려 부추기는 정책을 다시 내놓았다. 국민이 촛불을 든 이유는 국정농단을 막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정부가 정국혼란을 이유로 올바른 경제정책을 펴지 않는다면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국정농단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책임이 크다. 경제위기는 대통령 본인이건 대통령 권한대행이건 관계 없이 찾아온다. 국정운영의 책임자로서 경제의 중심을 잡고 산업 구조조정과 성장동력 창출 등 근본적인 경제 정책부터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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