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반대 움직임이 거센 가운데 이에 동참한 세계 최대 반도체업체 인텔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선언해 눈총을 받게 됐다.
인텔은 8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 주 반도체 공장에 70억 달러(약 8조220억 원)를 투자해 3000개의 고소득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치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회동하고 나서 이같은 내용을 공개했다고 포브스가 보도했다.
인텔은 애리조나를 포함해 미국 4개 주에 반도체 공장을 갖게 된다. 이번에 투자할 애리조나 주 챈들러 공장은 ‘팹42(Fab42)’로 불리고 있다. 인텔은 당초 지난 2011년 팹42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2013년에 생산을 개시할 예정이었으나 PC시장 축소 등을 이유로 2014년에 가동을 무기한 연기했다. 그러다가 미국 내 제조업 공장 건설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회사 정책을 180도 바꾼 셈이다.
인텔은 애리조나 주 공장은 간접적으로도 1만 개 이상의 장기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PC업계의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 인텔이 지난해 보여준 대응과는 대조적이다. 인텔은 지난해 초 전체 회사 인력의 11%에 달하는 1만2000명을 감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르자니치는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팹42는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며 “또 미국이 반도체산업에서 글로벌 리더로 남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미국의 그동안 세제와 규제 환경이 세계 나머지 국가와 비교할 때 불리한 입장에 있지만 인텔 칩 웨이퍼 제조와 연구·개발(R&D) 기반은 미국에 있다”며 “이것이 우리가 새로운 규제 표준과 투자정책을 통해 전 세계에서 미국 제조업을 더욱 경쟁력 있게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팹42는 3~4년 후 완공될 것으로 예상되며 회로 선폭이 7나노미터인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하게 된다. 인텔은 애리조나 공장이 PC 대신 나날이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데이터센터와 사물인터넷(IoT) 수요를 채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애플 구글 등 120개 이상의 실리콘밸리 기업이 이번 주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인텔도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인텔이 대규모 고용창출 계획을 밝히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포브스는 크르자니치 CEO가 IT 업계의 전반적 정서에 인텔을 연계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이미 지난해 6월 트럼프를 위한 기금모금 만찬행사를 계획했다가 뉴욕타임스(NYT) 보도로 이를 취소하는 등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자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