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전 사업에서 발생한 거액의 손실로 해체 위기에 놓인 일본 도시바가 분사해 새로 설립하는 반도체 메모리 회사의 지분 매각 규모를 확대했다.
21일(현지시간) 일본 언론들은 도시바가 반도체 지분 매각 규모를 당초 20%에서 50%로 대폭 늘려 최소 1조 엔(약 10조원)을 조달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 가치는 최대 2조 엔으로 추산된다. 도시바의 이런 자금 조달 계획에는 미국 애플 등 여러 기업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도시바는 당초 반도체 사업을 분사한 뒤 새로 설립하는 회사의 지분을 20%만 매각할 계획이었다. 그러다가 계획을 다시 수정해 완전히 매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현시점에서는 다시 지분 3분의 1 이상을 보유해 경영권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협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도시바에 대한 신용 불안을 진화하기 위해 자금 조달을 우선시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경영권에 구애받지 않도록 할 셈”이라고 말했다. 도시바는 일본 내 공장과 고용을 유지한 후 일본 국내외 여러 회사나 펀드에 메모리 사업을 매각할 방침이다. 전날 일본의 일간공업신문(닛칸코교신분)은 도시바와 협력 관계에 있는 미국 웨스턴디지털(WD)과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외에 IT 업계 거물인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도 도시바의 메모리 회사 지분 인수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대로라면 메모리 업계의 미국 일본 연합으로는 최대이며, 한국 삼성전자에 대항하는 구도가 되는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지분 매각 입찰은 내년 3월 끝나는 2017 회계연도 안에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주거래 은행 중 일부는 향후 원전 사업 리스크를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새 메모리 회사의 주식을 되도록 많이 매각해 재무 기반을 확고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지분 매각에 난항도 예상된다.
도시바는 원전 사업에서 7125억 엔의 손실이 발생했고, 자기자본은 작년 12월말 현재 1912억 엔이며, 내년 3월 말이면 1500억 엔 마이너스(-)가 된다. 도쿄증권거래소 기준으로는 1부 상장 기업이 회계연도말에 채무 초과 상태이면 2부로 강등된다. 이 때문에 자본 확충을 위해서라도 반도체 메모리 사업을 분사해 설립하는 새 회사의 주식 매각이 시급하다.
메모리 사업은 스마트폰용 핵심 부품으로 도시바 입장에선 큰 수익원이다. 그럼에도 쓰나가와 사토시 사장은 지난 14일 기자 회견에서 “이 사업의 모든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상황이 다급하다는 의미다. 도시바는 지난해 6월 분식회계 파문으로 줄어든 자본을 회복하기 위해 의료기기 자회사 도시바 메디컬 시스템스를 6655억 엔에 캐논에 팔아넘기기도 했다.
주거래 은행들은 도시바를 지원할 방침이다. 주거래 은행 중 하나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 측은 16일 기자회견에서 “경영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들었다. 주거래 은행으로서 가능한 지원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메모리 사업의 가치를 고려하면 자기자본은 플러스가 유지될 것”이라는 인식을 나타냈다.
한편 일본 재계는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을 매각하면 인재와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게이단렌 회장은 20일 기자회견에서 “기술과 사람이 국외로 유출되는 문제”라며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을 분사한 후 주식을 매각하는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