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총재는 9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서 열린 ECB 정례 통화정책회의를 마치고 나서 한 기자회견에서 “추가통화 완화 조치를 취해야 할 절박감이 더는 없다”고 말했다. 이날 보도자료에서 그간 반복돼 사용된 ‘필요 시 위임된 책무 범위 내에서 허용된 모든 수단을 쓸 준비가 돼 있다’는 문구가 생략된 배경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는 물가 하락에 대한 불안정성을 담았기 때문에 완화 기조 뉘앙스의 문구를 빼 ECB의 정책 가이던스를 변경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다.
이날 ECB는 제로(0)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예금금리와 한계대출금리도 현행 마이너스(-)0.40%와 0.25%로 유지하기로 했다.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지만 시장에서는 드라기 총재의 발언을 대체로 ‘매파’로 해석했다.
드라기는 “ECB 위원들이 추가 금리인하가 필요하다고 예상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적어도 연말’로 돼 있는 채권 프로그램 종료 전에 ECB가 금리인상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이날 ECB가 제시한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은 지난해 12월 회의 당시의 1.3%에서 1.7%로 상향 수정됐다.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1.6%, 1.7%가 될 것으로 낙관했다. 이러한 낙관적인 전망의 배경에는 최근 유로존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있다. 유로존의 2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를 기록, ECB 목표치(2%)를 달성했다.
이날 시장에 반영된 내년 8월 ECB 금리인상 확률은 68%로 급등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이 확률은 31%에 그쳤다. ECB는 그간 최소 12월 말까지 운영되는 600억 유로 규모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면 금리인상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해왔다.
드라기 총재의 기자회견 후 유로화는 달러당 0.7% 상승해 주간 최고치인 1.0615달러를 돌파했고,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드라기 총재는 시장의 반응을 의식한듯 자칫 테이퍼링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디플레이션 위험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인플레이션에 대한 승리를 논할 준비는 아직 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