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많지 않았을 때라 한 반에서 열 명씩 돌아가면서 읽고 독후감을 내는 것이 숙제였다. 독후감은 소설을 썼다. 대충 책을 훑고 내용도 모르는 것을 가지고 친구들과 짜깁기를 해서 엉터리 숙제를 하곤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들은 운이 좋은 아이들이었다.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독서를 알게 하려는 선생님을 만난 것은 대단한 행운이라는 것은 대학교에 가서야 깨달았다. 중학교 졸업반일 때 순전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나는 책읽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성에 눈뜨고 연애편지라는 것을 쓰기 위한 방편으로 베끼기 작전을 하기 위해서 어렵게 책을 구해 좋다고 생각하는 구절을 공책에 옮겨 놓았던 것이다. 그것은 독서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책을 가까이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독서였던 것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에 들어가서였다. 국문과 학생이 독서가 너무 짧아 부끄럽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용돈의 많은 부분을 책으로 바꾸었으며 읽고 난 책들을 현금보다 귀중하게 보관하곤 했다. 그 시절 신구출판사의 문학전집을 모두 사 읽기도 했다. 늘 내 몸처럼 끼고 다니던 것이 ‘현대문학’이었다. 아무리 용돈이 달려도 ‘현대문학’은 샀다. 그리고 나의 또 하나의 팔처럼 겨드랑이 사이에 그 ‘현대문학’을 달고 다니며 자랑스러워했었다.
밤새워 책을 읽었다. 밤새워 무엇인가 쓰고 지웠던 시절도 그때이다. 홀로 감격하고 홀로 울고 홀로 슬퍼하고 홀로 장엄한 미래를 위해 밤새 쓰러져 있던 갈기를 일으키던 시절도 그때이다. 나는 어느 가을 날 학교 앞 서점에서 플라톤의 ‘잔치’를 샀다. 적어도 철학적 바탕을 이루고 난 뒤에 시를 써야 할 것 같았다. 늘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며 친구들 앞에서 난 이렇게 어려운 것도 읽는다는 자만심을 앞세웠다. 우쭐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아직도 그 잔치를 잘 모르며 성실히 읽은 바도 없다. 그 책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손에 가락지 하나 끼듯 장식으로 사용했던 책이었다. 그런데 밉지가 않다. 책으로 사치를 하려던 내 어린 시절의 과장이 어쩐지 귀엽기 때문이다.
대학교 3학년이 되면서 우리에게 소설을 가르친 분은 안수길(安壽吉) 선생님이셨다. 그분은 단아하고 깊은 눈매를 가졌는데, 책읽기에 대해선 남다른 열정을 보이곤 하셨다. “책 한 권에 밥 열두 그릇”이라는 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시절 가난한 학생들이 많았고 책을 사는 일도 어려운 때인지라 책보다는 밥을 더 중시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책이야말로 밥이 되는 것이며, 그 밥이야말로 영원히 인간다운 생명을 유지시킨다는 말씀도 하셨던 것이다. 책이 밥이라는 사뭇 상징적인 이미지의 감동을 내게 안겨주셨던 것이다. 그 후 책을 살 때마다 나는 밥 한 그릇을 산다는 생각을 했다. 매우 행복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