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요 언론들이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한미ㆍ한중 관계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한국이 60일 안에 대선을 시행해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 언론들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주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일(현지시간) 박근혜 전 대통령 축출 이후 한국에는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에 좀 더 회의적인 문재인 전 대표가 차기 대통령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후보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에 의문을 표시했으며 친중국 정책을 옹호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장려하고 있으며 그의 뒤를 잇는 다른 후보들도 정치 스펙트럼 상 좌익에 가깝고 문 후보와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헌재의 만장일치 박근혜 파면은 6개월간 한국을 뒤흔든 부패 스캔들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다만 미국과 아시아 정부 관리들은 북한과 중국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동북아에 새 불확실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15일 일본 도쿄, 17일 서울, 18일 중국 베이징 등 동북아 3국을 잇따라 방문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고 도발을 일삼는 북한에 대한 금융 압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미국 전ㆍ현직 관리들은 한국의 정치적 변화가 사드 배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차기 한국 대통령이 합작사업과 경제적 협력 등으로 북한에 구애작업을 벌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00년대 초 아들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한국 정부의 관계와 유사할 수 있다고 예상한 것이다. 당시에도 북한을 놓고 양국의 견해가 달라 긴장이 고조됐다.
블룸버그통신은 박근혜 탄핵으로 한국은 북한, 중국과의 관계가 리셋될 수 있는 문을 열었다고 분석했다.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인 후보들 모두 북한에 부드럽게 접근하는 것을 선호하며 사드 배치 재고려에 열려 있다고 통신은 설명했다.
존 델러리 연세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진보 진영은 북한에 관여하면 미사일 테스트 중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중국 전략은 한국 국민이 사드 배치에 따른 대가를 인식할 수 있도록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강하면 한국인의 분노를 살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의 경쟁자인 안철수 후보는 사드 배치를 지지하지만 중국이 북한 제재에 협력하고 북한과 한국의 관계가 개선되면 사드를 철회하는 것에 열려 있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들은 북한 금강산 관광 재개와 지난해 초 폐쇄된 개성공단을 다시 열기 위한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문 전 대표가 북한과의 대화를 중시하며 한국과 미국의 매파적 입장에 매우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특히 문 전 대표와 진보진영 파트너들은 중국의 격노에 사드가 미치 쿠바 미사일 위기와 같은 대립과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선 이후 한국이 중국, 북한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지만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사드를 폐기하거나 ‘햇볕정책’으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