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시기도 앞당겨지고,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고령화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정부가 매년 지출하는 건강보험 진료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가 7%를 넘어가며 고령화 사회에 첫 진입한 데 이어 2018년에는 노인 인구가 14.3%를 차지하는 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또 2025년에는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가는 초고령사회로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예상치는 당초 정부가 예상했던 시기보다 1~2년 더 빨라진 것이다. 고령사회 진입 시기의 경우 당초 2020년 이후로 봤지만 2년이나 당겨진 것이고, 초고령사회 진입 시점도 당초 2026년에서 1년이 더 빨라졌다. 고령사회 진입 이후 초고령사회까지 불과 25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이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독일(77년)이나 일본(36년)과 비교해도 증가 속도가 높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빠르게 고령화하는 이유로는 개인의 건강관리와 각종 의료·요양시설 인프라 확충 등으로 갑작스레 수명이 늘어나게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인층 진입이 시작되는 2020년부터 노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점 등이 꼽힌다.
◇ 전체 진료비 중 노인 진료비 40% 육박… 건강보험 재정 ‘빨간불’ = 고령화 추세가 이어지면서 건강보험 진료비 중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서 집계한 자료를 보면 건강보험 전체 진료비에서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4조516억 원에서 2016년 25조187억 원으로 늘어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서도 우리나라 전체 진료비 가운데 노인 진료비 비중이 2010년 32.2%에서 지난해 38.7%로 증가했고, 2020년 45.6%, 2030년엔 65.4%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1인당 연평균 진료비에서도 크게 차이가 난다. 지난해 1인당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 연평균 진료비는 113만 원인 반면, 65세 이상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3배가 많은 362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영향으로 건강보험의 재정도 급격히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기획재정부가 2016~2025년 기간의 ‘건강보험 중기 재정추계’를 분석한 결과, 내년에 적자로 돌아서고 2023년에는 모두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더욱이 건강보험은 고령화로 인한 노인 진료비 증가 등으로 연평균 8.7% 증가해 2023년에는 적립금을 모두 소진할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건강보험 지출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3.2%인 52조6000억 원 규모다. 하지만 정부는 매년 8.7%씩 증가해 2024년에는 100조 원을 넘긴 데 이어 2025년에는 GDP 대비 4.7%에 달하는 111조6000억 원까지 급증할 것으로 판단했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대로 저소득층은 덜 내고, 고소득층은 더 내도록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를 개편하면 수조 원의 재정 손실도 발생하는 상황이다.
◇ 정부, 노인 의료복지 개편 시급 =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의료복지 부담이 심각해지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정부는 ‘내수 활성화 관계 장관회의’에서 ‘동네 의원 외래 진료 본인 부담금 노인정액제’ 개편 방안을 마련했다. 노인정액제는 노인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고 총진료비가 1만5000원 이하로 나오면 1500원만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총진료비가 1만5000원을 초과하면 진료비 총액의 30%인 4500원을 부담한다.
노인정액제가 2001년에 정해져 이 기준을 16년 동안 유지하다 보니 1만5000원을 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노인들을 위해 정책 당국이 이번 기회에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노인들의 가벼운 질환 진료비 부담을 완화하는 것과 중증 질환 중심으로 보장성을 늘리는 것을 놓고 우선순위를 검토하고 있다. 노인 의료비가 급증하고 있어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증 환자 보장률이 우선”이라면서도 “노인정액제는 노인 보장성 측면도 있지만, 실제 진료비는 1만5000원에서 1만5100원으로 100원 올라가는데 본인 부담은 3배 올라가는 불합리한 부분을 해소하려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건보료 재정에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의사협의회와 어른신들의 의견을 반영해 절충점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무작정 현장의 목소리만 반영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보장성 강화 때문에 노인정액제를 손봐야 한다면 노인들의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며 “만성질환 관리 의무 가입 등 자신의 건강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본인부담금을 경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01년 이후 노인정액제로 노인들이 진료비 부담이 줄어들자 ‘의원에 마실 간다’거나 ‘1500원 여사’가 등장했다”며 “아무런 대책 없이 정액제 적용 금액을 올리면 늘어나는 노인진료비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