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 헌정사(憲政史)를 돌이켜보면 절대적인 법을 권력자의 통치를 위한 단순 도구로 전락시키는 불행한 역사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7월 17일 제헌국회에서 제헌 헌법이 제정된 이후 1987년까지 총 9번의 개헌이 이뤄졌다. 9번의 개헌 중에 2번은 군사쿠데타로, 4번은 독재자의 장기 집권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기준으로 나눠지는 일반법과 특별법도 마찬가지이다. 이 법들은 집행기관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해 집행된다. 그렇다 보니,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마다 집행기관에 힘(?)을 더하기도 빼기도 한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여러 건의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그런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난 명분은 집행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의 독립성과 위상 강화이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여러 곳에서 의구심을 살 만한 대목이 눈에 띈다.
국민의당 대선후보로 유력한 안철수 전 대표가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담긴 내용도 그렇다. 안 전 대표는 공정위 상임위원 수를 5명에서 7명으로 확대하고, 국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토록 하겠다고 개정안을 내놓았다. 공정위의 권한 강화는 일종의 명분이고, 오히려 국회의 입김이 더 세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에서도 벗어난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취지는 좋다. 공정위가 기업 담합과 부당 지원 행위, 일감 몰아주기 등의 조사에 한해 검사로부터 영장을 발급받아 압수수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공정위 입장에서는 압수수색 권한을 통해 조사의 실효성을 얻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기소독점주의 체제하에서 공정위 권한보다는 검찰에 더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 제246조에서는 ‘기소독점주의’라는 것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오직 검사만이 가진다는 의미이다. 공정위가 강제조사 시작 전부터 검찰을 통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고 기소 과정부터는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는 구조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손을 대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집행기관이 국민과 국가를 위해 쓰라고 빌려준 법 권한을 제대로 쓰지 않고, 도구로만 사용한다면 반드시 거둬들이는 것은 마땅하다.
다만, 좀 더 신중하게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법 제정이나 개정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한 번 성문화(成文化)한 법은 고치기도 어려울 뿐더러 쏠린 균형을 바로 잡기는 더더욱 힘들다. 이러한 사실을 입법권자가 다시 한 번 깊게 헤아려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