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이들 공약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미봉책(彌縫策)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고용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임금과 복지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어떠한 정책도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들과 기업인들이 입을 모은다.
얼마 전 만났던 성명기 이노비즈협회장은 “정부의 대기업 중심 일자리 늘리기 정책이 아닌 중소기업이나 혁신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성 회장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대기업 일자리는 4만6000개가 줄었지만, 이노비즈 일자리는 3만5000개 이상이 늘었다”며 “일자리 대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어디에 먼저 투자해야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기업 규제 개선과 무엇보다 산업단지 부지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기업들의 투자 환경이 많이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산업단지 부지는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편한 지역이라고 성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서울 출퇴근이 어려우면 가뜩이나 중소기업의 처우가 대기업보다 열악한데 누가 오려고 하겠느냐”며 “판교에 있는 우리 회사도 부동산 비용만 160억 원 이상 들어갔는데, 이 돈을 재투자하면 직원 복지와 임금을 지금보다 더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성 회장은 혁신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창의적 인재를 만들 수 있는 교육 제도의 혁신이 이뤄져야 제대로 된 일자리도 많이 늘어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 기업인의 이야기이지만, 그의 말은 유력 대선후보와 정책당국자들이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최근 정치권이나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대책이나 내수 경제 활성화 대책에서도 중소기업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근로시간 52시간 단축이나 매달 마지막 금요일 오후 4시 퇴근이 그렇다는 말이다.
근로시간 52시간 단축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중소기업이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으로 강하게 반발하여 결국 지난달 27일 무산됐다. 중소기업의 현실을 철저히 외면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경제 공약이라는 비난이 거셌기 때문이다.
정부도 한 달에 한 번 오후 4시 조기 퇴근하는 유연근무제를 기획재정부, 기상청, 중소기업청 등 일부 중앙행정기관부터 시행한다고 3일 발표했다. 이 제도는 일본의 ‘프리미엄 프라이데이’에서 따온 제도로, 가족과 함께 2박 3일 여가를 보내면 내수 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마련한 제도이다. 공무원이 먼저 시행하면 민간 기업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으로 보고 시행한 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제도는 그 발상이 현실적이지 못한 데다 민원 담당 공무원이나 중소기업과의 형평성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예전에 기재부를 비롯해 세종정부청사를 3년간 출입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봤던 중앙공무원 대부분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었다. 월차는 고사하고 여름휴가 5일도 제대로 못쓰는 공무원도 상당수 있었다. 그랬던 공무원이 불과 2년도 안 돼 오후 4시 정시에 퇴근할 수 있을까.
명분이나 취지는 좋지만 현실성이 전혀 없는 정책이다. 오히려 공무원과 민간 직장인 형평성 시비로 사회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40만 명에 육박하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만 더 늘리는 정책이 되지 않을까.
물론 이 제도를 대기업들은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고용의 90%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은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기업이 노동법만이라도 철저하게 준수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하는 현실에서 상대적 박탈감만 더 키울 수 있다. 사상 최악 수준인 청년 실업에도 중소기업에선 낮은 임금과 복지 수준이 문제여서 구인난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더라도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 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정치권과 정부가 ‘일자리 늘리기’와 ‘내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한다면 먼저 중소기업의 임금과 복지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근본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 사회 대개조를 하는 데 큰 비용이 들더라도 지금 잡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 문제로 전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