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특히 정치 관련 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더러 “이제 명분 찾기의 수순으로 접어든 게 아닌가 한다” 혹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느니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 등의 보도를 들을 때가 있다. 다 ‘명분’을 부정적 의미의 단어로 보고 하는 말들이다. 즉 명분을 구실이나 핑계, 혹은 허세나 허울이라는 의미로 보고 하는 말들이다.
명분은 한자로 ‘名分’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이름 명’, ‘분수 분’이라고 훈독한다. ‘分’은 본래 ‘나눌 분’으로 더 많이 사용하지만 여기서는 ‘분수’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것과 차이를 두기 위해 사람이나 사물 혹은 어떤 현상에 붙여서 부르는 일컬음이다. 따라서 이름은 사람으로 말하자면 자기만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분수(分數)’는 직역하자면 ‘자기에게 나뉜 것의 수’이다. 즉 ‘자신의 신분과 처지에 맞는 제한’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따라서 명분은 자기에게 주어진 이름값을 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분수를 지키며 떳떳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명분에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을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했다.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생명보다도 중히 여겨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것이다.
이름이 바르게 정립된 세상이 바른 세상이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혹은 자신이 지은 이름값을 하면서 사는 세상,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즉 임금은 임금의 이름값을 다하고 신하는 신하대로, 아비는 아비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이름값을 다하면 세상은 어지러울 일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헤아려 분에 맞게 사는 세상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세상이다.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것을 열정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명분은 버려야 할 핑계나 허울이 아니라, 이 시대의 우리가 더욱 챙겨야 할 덕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