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 사태로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중심으로 재벌 개혁에 대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논의의 핵심은 바로 지주사 전환이다.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막는 다양한 법안을 검토하고 있어, 재계의 지주사 전환은 한층 가속도를 받을 전망이다.
◇상법·법인세법 등 자사주 활용 제한 시동 = 최근 현대중공업은 현대로보틱스를 지주회사로 세우기로 하고 기업을 분할했다. 또 형제 간 경영권 분쟁과 사드 사태로 골머리가 아픈 롯데그룹도 지주회사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기타 중견 기업들도 지주회사 전환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국내 1위 그룹인 삼성 역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갖가지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정치권에서 상법개정안과 공정거래법개정안, 법인세법개정안 등을 통해 재벌개혁 방안을 강하게 밀어붙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개정안의 주요골자들은 살펴보면 자사주 활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향후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재벌 총수 일가가 부담하는 비용을 더욱 크게 늘려 놓으려 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추진되는 상법개정안은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자사주의 분할신주배정을 금지하고 있다. 인적분할시 자사주 활용이 금지되면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대주주의 이익이 크게 축소될수 밖에 없다. 공정거래법개 정안 역시 인적분할 이전에 자사주의 소각을 강제하고 있으며, 자사주의 의결권 사용을 제한해 대주주의 지배력과 이익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법인세법개정안은 자사주에 분할신주를 배정하면 법인세를 부과해 기업의 지주회사 전환 비용을 늘리고 있다. 또한 올 7월에는 지주회사 자산총액 요건을 기존 1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상 향할 예정이어서, 자산총액 5000억 원 이하의 중견기업들은 이미 지주회사 전환을 서둘러 진행하고 있다.
◇삼성·현대차·SK·롯데 등 지배구조 개편 어떻게 진행되나 =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을 추진했지만 최순실 사태 여파로 잠정 중단됐다. 우선 삼성그룹에서 예의 주시하는 규정은 이른바 자사주 마법을 막는 상법 개정안과 중간금융지주사 도입 논의다.
이재용 부회장의 낮은 삼성전자 지분율(0.52%)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적분할이 동반되는 지주사 전환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의 인적분할로, 삼성전자 지주사는 사업자회에 대한 주식을 자사주 13.22% 만큼 확보하게 되면서 사업자회사에 대한 의결권 확보가 손쉽게 이뤄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조기 대선 국면과 맞물려 야권에서는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을 막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55%의 처리를 위해서 일반지주회사가 금융계열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중간금융지주사 도입도 논의가 됐지만 현재는 정치적 상황으로 논의가 소강된 상태다.
현대차그룹도 후계승계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지주사 전환의 과제를 안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기 위해선 4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지분을 가진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해 지주사 전환의 지렛대로 삼을 거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한 뒤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투자회사를 합병해 지주사로 만드는 시나리오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찌감치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SK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를 ㈜SK의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을 고민 중이다. 시나리오는 △하이닉스를 보유한 SK텔레콤 중간 지주회사를 인적분할한 후 SK와 합병하는 방안 △SK와 SK텔레콤 모두 중간 지주회 사를 설립해 합병하는 방안 △SK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후 SK텔레콤이 보유한 SK하이닉스와 교환하는 방법 등 3가지가 있다.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 형태의 지배구조를 가진 룻데그룹도 지주사 전환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롯데쇼핑과 롯데제과를 분할해, 합병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이렇게 되면 ‘호텔롯데→합병 롯데쇼핑·제과 투자회사→계열사’ 형태로 지배구조가 단순화된다.
김태현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재벌 중심의 사회 구조로 재벌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 현대차, 롯데, 현대중공업 등이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