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지키는 것은 선(善)이고 약속을 어기는 것은 악(惡)이다. 공약을 지키는 정치인은 박수를, 어기는 정치인은 비난을 받는 이유다. 그러나 그 공약의 내용이 선인지 먼저 따져보는 것이 순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공약을 지켰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파리 기후변화협정 파기를 주장했다. 3월에는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만든 ‘클린 파워 플랜(Clean Power Plan·청정전력계획)’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파리협정 폐지는 그 연장선이자 공약 실천의 일환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을 지켰다고 해서 박수받는 대통령이 되리란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파리협정에서 발을 빼겠다는 것을 놓고 대부분의 전문가와 나라들이 한목소리로 정책적인 퇴보라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1공약인 ‘일자리 창출’도 배반하는 셈이다. 미국 기업 중에 이번 트럼프의 결정을 반기는 곳은 소수다. 미국 최대 석유공급 업체인 엑손모빌을 포함해 포드, 알파벳 등 분야와 규모에 관계없이 기업들은 파리협정 파기를 지탄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기치로 기업들과 서슴없는 스킨십을 보였던 CEO 대통령이지만 되레 정말 기업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시하지 못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의 언행일치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점이다. 파리협정 폐기와 더불어 ‘트럼프케어(미국건강보험법·AHCA)’도 공약 이행의 성과로 꼽히는데 두 정책 모두 오바마 지우기에 속한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공약이라서기보다 전 정권의 성과를 뒤집으려고 열과 성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을 포함한 외교 문제에서는 오락가락이다. 당선 전에는 환율조작국 문제로 중국에 발톱을 세우다가 4월에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겠다고 돌연 태도를 바꿨다. 의도적 언행일치는 결국 언행 불일치다. 전 정권의 그림자를 지우는 공약만 실천해서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