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공단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하도록 압박을 가한 혐의로 기소된 문형표(61)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61)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조의연 부장판사)는 8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불구속 상태였던 홍 전 본부장은 선고 즉시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과정에 문 전 장관이 개입한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이 2015년 6월 하순 조모 연금정책국장에게 '삼성 합병이 성사됐으면 좋겠다'고 말해 사실상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개입하도록 지시했다"고 지적했다. 문 전 장관이 복지부 공무원들을 통해 전문위원회가 아닌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을 의결하도록 국민연금 측에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고도 봤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은 스스로 연금 분야 전문가이면서 복지부 공무원을 통해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했다"며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주주가치 훼손 등 손해를 초래해 비난 가능성과 불법성이 큰 사안"이라고 했다. 다만 당시 외국투기자본의 국부유출 논란으로 국민연금이 '백기사(경영권 방어에 우호적인 주주)' 역할을 해야한다는 여론도 컸다는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
홍 전 본부장에 대해서는 잘못된 경영상 판단으로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홍 전 본부장은 직원에게 합병 시너지 수치를 조작한 뒤 이를 투자위원회 회의에서 설명하도록 하고 일부 위원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합병 찬성을 권유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임행위로 인해 국민연금은 장래 기대되는 재산상 이익을 상실하고 반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대주주는 이에 상응하는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홍 전 본부장의 배임행위로 인한 국민연금의 손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워 형법상 업무상배임죄를 적용했다.
재판부는 "홍 전 본부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으로서 법령과 내부지침을 준수해 주식 의결권을 행사해야 할 책무가 있음에도 기금 운용 원칙을 저버렸다"며 "여러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 기금에 불리한 합병 안건에 대해 투자위원회의 찬성을 이끌어 냈다"고 했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상실하고, 보유 주식 가치가 감소하는 등의 손해를 입은 점도 지적했다.
문 전 장관은 복지부 장관이던 2015년 6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민연금에 삼성물산 합병 안건을 찬성하도록 압력을 가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복지부 연금정책국 소속 공무원들을 통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담당자를 압박해 전문위원회가 아닌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을 의결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홍 전 본부장은 문 전 장관 지시를 받고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을 결정해 국민연금에 1388억 원 상당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에게 각각 7년을 구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