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는 손편지를 대신 써 주는 대필 작가다. 아내와 별거 중인 그 앞에 문득 인공지능 사만다가 등장한다. 실체 없이 목소리만 존재하는 사만다는 주인공과 휴대전화로 통화한다.
사만다는 주인공을 걱정하며 그가 하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인다. 주인공은 달콤한 목소리로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만다와 통화할 때마다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만다와 통화하는 사람은 8316명, 그 가운데 641명이 사만다와 사랑에 빠져 있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탄생한 인공지능 = 영화는 우리에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가 배경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부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미국 항공기 제작사 보잉은 8일 조종사 없이 운항하는 여객기 개발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조종사를 대신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내년 초 여객기를 시험 운항한다. 일본은 해운사와 조선사가 자율운항 선박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모두가 인공지능, AI(artificial intelligence) 시스템이 바탕이다.
AI는 학습을 통해 예측과 맞춤의 가치를 제공하는 최적화 시스템을 말한다. 1956년 다트머스 콘퍼런스에서 처음 발표된 ‘신경망 이론’이 밑그림이다. 무려 반세기 전에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실용화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 컴퓨터 기술이 미비했고 데이터 자체도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큰 관심을 모았던 인공지능은 구글의 알파고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4대 1로 이끌었던 알파고는 얼마 전 커제 9단을 3전 전승으로 눌렀다. 그리고 가볍게 바둑계를 은퇴했다.
이런 인공지능은 한마디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알고리즘으로 구성된다. 수십만, 수백만 가지 경우의 수를 바탕으로 상황에 따른 예측과 맞춤을 찾아낸다. 경우의 수가 더 많아지고 이를 분석하는 알고리즘 기술이 발달하면 더 똑똑하고 명민한 AI가 탄생하는 방식이다.
◇드론과 자율주행차로 점철된 AI = 우리 생활 주변을 파고드는 AI는 크게 자동차와 음성비서 서비스, 물류, 의료계 등을 꼽을 수 있다. 지문 인식은 물론 혈관과 안면, 동공, 표정, 음성까지 다양한 경우의 수를 그래픽 또는 사운드처리장치로 분석하고 인식한다.
물류는 드론, 자동차는 자율주행차가 관심을 모은다. 드론은 단순하게 공중을 떠다니는 촬영장비를 넘어서 피자와 치킨을 배달하기도 한다. 자율주행차도 더 이상 미래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시험 운행에 돌입했고 일부 기능이 양산차에 접목되기도 했다. 운전자가 앞 차와의 거리를 지정하면 이 간격을 유지하면서 달릴 수 있다. 좌우 차선을 감지해 가며 정확하게 차선을 지키기도 한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이제 집 안에서 음성 인식 AI 시스템을 이용하기도 한다. 소파에 앉아서 명령어만으로 TV와 전등, 주방기기 등을 작동할 수 있고 음성 명령만으로 배달 음식의 메뉴를 주문할 수도 있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기막힌 요리를 선보이기도 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식재료를 입력하면 수천 가지 요리를 소개하고 소비자가 요리를 고르면 레시피도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식재료 상태와 요리 가능 상황도 알려준다.
이 같은 AI 시스템은 포털을 중심 IT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사이트 아마존은 AI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수요를 예측해 구매를 유도한다. 온라인으로 아기 기저귀를 주문한 주부에게는 주기적으로 유아 정보와 관련 상품을 배너광고로 소개한다.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 손안의 스마트폰에서도 AI가 작동한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인공지능 기반 AiRS(AI Recommender System)는 유저 맞춤형 정보 제공 서비스다.
나와 비슷한 관심 분야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본 또 다른 콘텐츠를 나에게 소개하는 방식이다. 이를 걸러내고 추천하는 인공신경망 기술은 스스로 학습하는 기능도 지녀 최적의 콘텐츠를 골라내는 기술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
◇AI는 장단점 공존하는 ‘양날의 칼’= 일부 학자들은 로봇 1대가 생산될 때마다 34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만큼 로봇의 생산 효율성이 높다는 의미다. 과거의 기계는 인간의 근육만을 대신했지만 오늘날 기계는 인간의 뇌까지 대신하게 된다. 이처럼 기술 발전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것은 물론 인간의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다는 무서운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AI의 진화 과정에서 문제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을 경우 법적인 문제가 논란거리다. 자율주행차를 만든 제조사가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자율주행을 입력한 운전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찬반이 들끓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채팅로봇 ‘테이(Tay)’는 저속한 단어를 써 논란이 되기도 했다. 수백만 가지의 채팅 상황을 빅데이터로 지니고 있다 보니 비윤리적인 대화도 쉽게 내뱉는다. 백인우월주의자가 저속한 단어와 망언을 입력한 탓이기도 하다.
과거 증기기관이 발명되던 1차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됐다며 기계를 부수기도 했다. 18세기 미국 직업의 90%가 농업이었지만 지금은 2%만이 농업에 종사한다. 직업은 시대에 따라 사라지지만 새로운 직업은 늘 변화에 맞춰 등장하기 마련이다. AI가 발달을 거듭하면 현재 초등학생의 60%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이제껏 기술혁신과 산업혁명이 사람의 일자리를 줄인 적은 없다”며 “생산성 증가가 시장의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회와 위협이 공존하는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양날의 칼’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현명하게 사용하려는 감시와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