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또 잊히는 분식회계의 악몽

입력 2017-07-0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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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업금융부장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회계 개혁에 대해 진행된 것은 전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회계 투명성’을 공약했다. 회계 투명성 문제가 이례적으로 대통령 공약에까지 들어갔던 이유는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파문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규모는 수조 원대로 알려졌다. 흑자라던 회사가 갑자기 2013과 2014 회계연도에 4조 원이 넘는 손실을 냈다고 발표하면서 온 나라를 경악하게 했다. 책임 소재 공방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법원은 안진회계법인에 대해 감사팀을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혐의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관련 회계사들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는 과거에 대한 단죄(斷罪)일 뿐, 근본적인 치유책은 될 수 없다. 정책적인 개선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연구가 제이콥 솔은 회계 정책과 정권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무관치 않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루이 14세(1638~1715) 시절 유명한 재무 장관인 장 바티스트 콜베르(Jean Baptiste Colbert)는 나라의 재정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있는 회계장부를 만들었다. 루이 14세는 수입과 지출, 자산을 기록한 이 새로운 회계장부를 1년에 두 번씩 받았다고 한다. 복식부기(複式簿記) 원리로 작동하는 정교한 형태의 회계 시스템은 프랑스 절대왕정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콜베르가 죽자 루이 14세는 회계장부 기록을 중단했다. 개인 권력 독점을 위해 귀찮은 회계장부를 없애 버린 것이다. 결국, 프랑스의 회계 시스템은 붕괴된다. 이후 프랑스는 75년간 험난한 재정 위기를 맞게 된다.

회계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시대에 태동해 중세 이탈리아인에 의해 복식부기로 발전했다. 근대 이후에는 기업과 정부의 재정을 관리하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됐다.

고대 국가에서 회계가 정권의 안정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로마제국의 아버지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 때이다. 그는 제국 경영과 국고 관리를 위해 회계장부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관리의 도구이자 선전 도구로 활용했다. 이때부터 회계장부의 공개는 전통이 되었다.

하지만 중세 시대의 수도원과 왕, 영주들은 회계를 국가 통치의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장부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제이콥 솔에 따르면 스페인 제국의 몰락에도 잘못된 회계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카를 5세(1500~1558)는 남아메리카와 네덜란드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에서 천문학적인 부를 거머쥐었지만, 정작 이를 관리할 회계의 중요성은 깨닫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국가 재정이 악화됐고 무적함대가 몰락했다는 것이다.

회계 관리가 잘됐던 정권은 흥했던 반면, 분식회계가 자행된 정권은 망했다는 것이다.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회계사의 이중성을 묘사했다. 디킨스는 그의 소설 ‘크리스마스캐럴(A Christmas Carol)’에서 회계사를 선의를 가진 착한 사무원으로 묘사했지만, ‘리틀 도릿(Little Dorrit )’에서는 악의에 찬 관료로 그리고 있다. 회계사들이 일반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2008년 9월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리먼브라더스 사태는 잘못된 회계 감사와 연관성이 깊다. 리먼이 7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서브프라임모기지를 팔 때, 이것이 어떤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지에 회계법인은 침묵했다.

리먼 사태에서 촉발된 금융 위기는 10년도 안 된 일이다. 그런데 벌써 잊히고 있다.

정책 당국자들은 분식회계가 드러날 때만 호들갑을 떤다. 그러다가 덮어 두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문제가 수그러들면 슬그머니 업계와 타협하는 일도 잦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법인만 허용하는 회계법인 등록제가 시행돼야 한다.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한 감사인지정제도도 더 확대돼야 한다. 분식회계가 한순간에 나라 경제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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