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처음으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관련한 ‘이혼합의금’을 EU에 지불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를 비롯한 내각 인사들이 이혼합의금에 대해 비판적으로 발언한 것과 대조되는 입장 발표다.
영국 정부가 13일(현지시간) 제출한 ‘재정합의안’ 문서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영국이 떠난 채로 생존해야 하는 EU에 대한 의무가 있으며 이는 해결돼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영국이 EU에 대한 재정적 책임, 즉 이혼합의금에 대한 의무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했다.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합의금에 대해 명확하게 재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은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 처음이다.
이날 EU 측도 공개된 문서 내용을 확인했으며 영국 정부가 잠재적으로 중요한 진전을 보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실제로 EU 외교가에서는 이번에 공개된 조정안이 메이 총리의 기존 언급보다 표현적인 측면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혼합의금은 영국이 내기로 약속한 EU 회원국 분담금과 EU에 근무하는 영국 직원의 연금, 각종 프로젝트 출연금 등을 포함해 영국이 EU를 탈퇴하면서 정산해야할 돈을 말한다. EU는 이혼합의금으로 최대 1000억 유로(약 129조원)를 요구하고 있어 브렉시트 협상에서 최대 난제로 손꼽힌다. 그러나 그간 메이 정부는 과한 이혼합의금을 요구한다면 브렉시트 협상을 관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보수당 인사들은 오히려 영국이 유럽투자은행(EIB) 산하 펀드의 영국 몫인 90억 파운드를 되돌려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EU 측은 이혼합의금은 협상 불가라고 맞섰다.
그러다 양측은 지난달 19일 브렉시트 협상에서 이혼합의금부터 청산하기로 합의했다. 이혼합의금과 같은 EU 탈퇴 조건을 먼저 정리하자는 EU 측의 요구를 영국 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이에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총선 패배 등으로 협상력이 약해진 영국 보수당이 EU 요구에 굴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도 영국 정부가 EU 측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당장 17일에 있을 브렉시트 협상에서 EU 측과 이혼합의금을 놓고 정면충돌하는 것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재정합의안에서 이혼합의금에 대한 의무를 인정한 것은 EU 측에 대한 실질적인 양보라기보다는 초반 협상 분위기를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적인 전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영국 정부는 재정 문제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EU 측에 전달하지 않았다. 특히 재정합의안에 기술된 ‘의무’는 정확한 액수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를 둘러싼 양측의 기 싸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