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 랠리에 지난 수십 년간 시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가치투자자의 시대가 저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 가치투자펀드 투자수익률은 성장주에 투자하는 펀드에 비해 7%포인트 밑돌고 있어 2007년 이후 최악의 성적을 나타내고 있다.
리서치 업체 이베스트먼트(eVestment)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서 가치투자펀드와 성장주 펀드의 성적을 비교한 결과 세 지역 모두 가치투자펀드가 성장주 펀드에 뒤처지고 있다며 이는 2010년 이후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중소형주 중심의 러셀1000지수 종목 가운데 성장주로 구성된 ‘러셀1000성장지수’는 지난 상반기 ‘러셀1000가치지수’보다 상승폭이 10%포인트 더 컸다. 이는 상반기 기준으로는 지난 2009년 이후 가장 크게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지난 10년간 미국 성장주는 가치주보다 세 배 가까이 성적이 더 좋았다. 스테이트스트리트는 1940년대 말 이후 가치주는 가장 긴 부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펀드 분석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지난 10년간 미국 대형주 가치투자펀드에서 1160억 달러(약 131조 원)를 인출했으며 최근 1년간 빠져나간 자금이 전체 유출분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MSCI유럽가치지수는 상반기 상승폭이 3%에 그친 반면 MSCI유럽성장지수는 9%에 달했다. 아시아에서도 같은 기간 가치주 성적은 성장주보다 10%포인트 낮았다고 WSJ는 전했다.
가치투자는 주가수익비율(PER)과 순자산 등을 비교해 실제보다 가치가 낮다고 평가되는 종목에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선호하는 투자자들은 장기적으로 가치주가 오를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벤자민 그레이엄이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성공으로 수많은 투자자가 가치투자의 길을 걸었다.
대공황에서 미국 IT버블,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시장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가치투자는 최고의 투자방법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이례적인 저금리 기조와 느린 경제성장, 부진한 인플레이션 등으로 성장주가 가치주를 능가하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번스타인리서치의 켈먼 리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은 낮은 인플레이션과 저성장 속에서도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종목을 추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평생에 걸쳐 가치투자의 길을 걸었던 일부 투자자들도 현재 가치주의 부진이 이례적으로 오래 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가치투자자로 명성이 높은 GMO의 제레미 그랜덤 설립자는 “이번에는 과거와 아주 많이 다르다”며 “증시가 역사적 주기보다 훨씬 더 오랜기간 높은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가치투자자로서 나는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