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이 임명 나흘 만에 낙마한 뒤 기획재정부가 표정 관리를 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기재부는 R&D(연구개발) 예산 권한과 신설된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자리를 두고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치열했다.
17일 정부에 따르면 박기영 과기혁신본부장이 임명 나흘 만인 이달 11일 자진 사퇴한 후 기재부와 과기정통부 간 희비가 교체하는 분위기다. 과기정통부 내 신설된 과기혁신본부는 국가 R&D 사업 예산 심의·조정 권한을 행사하고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과학기술 정책 집행 컨트롤타워다. 혁신본부장은 차관급이지만, 국무회의도 참석하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요직이다.
이 때문에 과기정통부에서는 박 본부장 임명을 계기로 연간 20조 원(올해 19조5000억 원) 규모의 R&D 예산 주도권을 확보하려던 계획이었다. 현재는 과학기술기본법상 전체 R&D 예산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주요 R&D 예산에 대해 과기정통부가 사전배분조정권을 행사하고 있으나 나머지 3분의 1인 일반 R&D 예산은 기재부가 주도하고 있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일반 R&D 예산 중 출연연구기관 등의 인건비 책정뿐만 아니라, R&D 예비타당성 조사 권한, 부처별 R&D 지출한도 설정 권한 등도 확보한다는 구상이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R&D 예산과 관련한 권한을 과기혁신본부로 일원화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박 본부장이 사퇴하면서 추진동력을 상실했다는 관측이다. 박 본부장은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과학기술정책 공약을 설계해온 핵심 인물이라는 점에서 과기정통부가 희망하는 R&D 예산권 확보 등의 난제를 풀 적임자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박 본부장 사퇴가 R&D 예산권한 조정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정당국 입장에서는 전체 예산의 기준을 잡고 집행하는 게 중요하다”며 “과기정통부가 요구하는 R&D 권한은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