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간 첨예한 대립이 한풀 꺾인 가운데 아시아에서 또 다른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고 있다. 아시아 성장세를 주도하는 중국과 인도의 대립이 심화하면서 국경분쟁이 무역전쟁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미국 CNBC방송은 전 세계가 지금까지 북한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실제로 아시아에서 현재 가장 긴박한 ‘인화점(flash point)’은 세계 양대 신흥국인 중국과 인도의 긴장이라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도 경제지 이코노믹타임스(ET)는 인도가 이달 들어 중국에서 수입하는 93종 제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고 17일 보도했다. 니르말라 사타라만 인도 상공부 장관은 최근 의회 답변에서 “지난 9일부터 석유화학과 철강 비철금속 섬유 전자제품 소비품 등 다양한 품목에서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며 “다른 중국산 수입품 40건에 대해서도 반덤핑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인도는 지난해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가 465억6000만 달러(약 53조551억 원)에 달했다. 중국의 대인도 수출은 583억3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0.2% 증가에 그쳤고 수입은 117억6000만 달러로 12% 감소했다. ET는 중국 전체 수출에서 인도 비중이 2%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도가 중국산 수입품 전체를 보이콧해도 중국을 굴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도는 통신장비와 전력 등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무역전쟁이 벌어지면 오히려 인도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도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세계 2위 스마트폰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 예상되는 등 성장 잠재력이 큰 인도시장을 섣불리 포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유라시아그룹의 애널리스트인 샤일레쉬 쿠마르와 켈사 브로데릭은 “양측 모두 이번 사태가 실제 전쟁으로 번지면 경제적으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국경을 둘러싼 양국의 자존심 싸움이 무역전쟁을 더욱 확산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개월간 중국과 인도 부탄 등 3개국 국경선이 맞닿아 있는 도카라(중국명 둥랑·부탄명 도클람) 지역에서 인도와 중국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현대판 실크로드인 ‘일대일로’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이 이 지역에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하고 부탄이 지난 6월 중순 인도와 함께 이에 항의하면서 대립이 시작됐다. 부탄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인도가 군 병력을 파견하고 중국도 무장병력을 보내면서 대치하게 된 것이다. 지난 15일에는 인도와 중국군이 분할 통제하고 있는 라다크 지역의 판공호수에서 투석전과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했다. 이곳은 현재 분쟁이 한창인 도카라 고원에서 수천 km 떨어진 곳에 있다. 국경지대 전역에서 양측이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다.
히말라야 산맥이 있는 중국과 인도의 국경지대는 지리적으로 황량하고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이지만 최근 전운이 감도는 분쟁지역으로 떠올랐다. 양국 모두 아시아에서 헤게모니를 놓고 다투고 있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고 CNBC는 지적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인 채텀하우스의 게럿 프라이스 선임 연구원은 “이번 분쟁은 중국과 인도가 아시아에서 어떻게 서열을 놓고 자리다툼을 하는지 보여준다”며 “중국은 아시아에서 첫째가는 헤게모니 강국이 되기를 원하지만 인도도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며 절대 물러서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국 언론매체들도 신경전을 벌이면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8일 “도카라 지역에 대한 인도의 개입은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인도는 재앙을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ET 등 인도 매체들은 중국이 도카라에서 감히 전쟁을 벌이지는 못할 것이 확실하다며 자국이 이런 호전성을 극복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 모두 이런 대립을 지속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이들이 직면한 외교적 골칫거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와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으로 골치가 아픈 상황이다. 인도는 파키스탄과 카슈미르 지역을 놓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