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듣기에 순우리말인 것 같아도 사실은 한자어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어차피’와 ‘도저히’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어차피는 한자로 ‘於此彼’라고 쓰는데 ‘於’는 ‘-에’ 혹은 ‘-에서’라는 의미를 가진 처소격(處所格) 조사이다. 영어의 전치사 ‘in’이나 ‘at’에 해당하는 글자이다.
그리고 ‘此’는 ‘이 차’라고 훈독하며 ‘이, 이것’이라는 의미, 즉 영어의 ‘this’에 해당하는 글자이다. ‘彼’는 ‘저 피’라고 훈독하며 ‘저, 저것’이라는 뜻, 즉 영어의 ‘that’에 해당한다. 따라서 ‘於此彼’는 직역하자면 ‘이것에서든 저것에서든’이며, 이는 곧 ‘이것이든 저것이든’ 혹은 ‘이렇든 저렇든’이라는 의미이다. “어치피 가야 한다”는 말은 곧 “이렇든 저렇든 가야 한다”는 뜻이다.
도저히는 ‘도저’라는 한자어와 ‘-히’라는 부사형 접미사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단어이다. ‘도저’는 한자로 ‘到底’라고 쓰는데 ‘到’는 ‘이를 도’, ‘도달할 도’라고 훈독하고, ‘底’는 ‘밑 저’, ‘바닥 저’라고 훈독한다. 따라서 ‘到底’는 ‘맨 밑바닥에 이르도록’이라는 뜻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라는 말은 곧 “맨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다 해 봤는데 결국은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순우리말로 알고 일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도 실은 한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게 매우 많다. 이런 단어들은 한자를 이용하여 뜻을 파악하면 그 뜻이 보다 더 명료해지는데 국어사전은 한자 뜻풀이는 없이 그냥 한자만 병기한 다음에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아무리 하여도’라는 뜻풀이만 해놓았다.
어원은 알 필요 없이 그저 언중(言衆)에 의해 현재 사회에 드러난 뜻대로만 사용하자는 심사가 반영된 풀이이다. 국어의 왜곡과 오용이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한글은 한자와 함께 사용할 때 더욱 편리하고 빛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