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수사경력자는 전과자가 아니다

입력 2017-09-1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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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했던 27조 원 규모의 소멸시효 완성채권이 소각됨으로써 무려 140만 명에 달하는 채무자의 연체기록이 사라져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의 바탕에는 “소멸시효가 지나면 끝이지, 왜 시효를 연장해 가면서까지 채권추심에 시달려야 하느냐”라는 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상이 소액에 상환능력이 없는 빈곤층이라는 데서 정부의 충심(衷心)을 믿고 싶다.

조금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긴 하지만, ‘소멸’이라는 점에 착안해 볼 때 형벌의 영역인 전과기록 관리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청산해야 할 적폐(積弊)가 발견된다. 전과기록은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이하 법)’이 관리하고 있는데, 이 법의 목적은 전과자의 정상적인 사회복귀를 돕는 데 있다.

하지만 법의 취지와 달리 인권에 역행하는 규정이 아직도 버젓이 버티고 있음이 눈에 띈다. 무혐의자나 무죄자 등의 수사경력 정보를 일정기간 관리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나마 간통죄 폐지 이후 한동안 잊고 지내던 ‘한 번 전과자면 영원한 전과자’라는 소설 ‘주홍글씨’의 흔적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법은 수사경력자와 범죄경력자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에 갔다온 경험이 있는 자에 대한 ‘수사경력자료’는 벌금 미만의 형의 선고 및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관한 자료를 말한다. 즉 수사기관에 입건되었다가 아무런 범죄혐의가 없음이 드러난 사람에 대한 자료이다. 한편 ‘범죄경력자료’는 벌금형 이상을 받은 사람에 대한 자료로 법적인 의미에서의 전과자는 이를 말한다.

사법기관에 의하여 죄 없음이 밝혀졌는데도 단지 입건 전력을 이유로 들어 ‘수사경력자료’라는 형태로 일정기간 관리되고 있음은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전과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과자와 마찬가지로 취급받고 있어 향후 유사한 범죄혐의를 받을 때 마치 상습범처럼 취급받기 일쑤이다.

수사경력자료의 대상 중 문제가 되는 것으로는 검사의 불기소처분인 혐의없음, 공소권없음 및 죄가안됨 처분과 법원의 재판인 무죄판결, 면소판결 및 공소기각의 결정·판결이 있다. 이들에 대한 관리기간을 보면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 장기 10년 이상의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죄는 10년, 법정형이 장기 2년 이상의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죄는 5년이 지나면 비로소 각각 삭제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법정형이 장기 2년 미만의 징역·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죄는 즉시 삭제하도록 하되, 다만 법원의 무죄·면소·공소기각판결은 5년간 보존 후 삭제토록 하고 있다.

국가가 수사나 재판에 참고하기 위하여 개인의 전과(前科)가 아닌 전력(前歷)을 관리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으며 용납되어서도 안 된다. 무혐의나 무죄는 범죄혐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범죄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감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입건자에 불과한 시민을 마치 전과자처럼 취급하여 일정기간 관리한다는 것은 지나친 사법기관 편의주의 발상이다. ‘콩 심은 데 콩 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입건 전력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에 다름없다.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처럼 자신의 정보가 국가에 의하여 오용(誤用)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데는 법 규정 형식이 은밀하고 체계가 복잡하게 되어 있는 것도 한몫한다. 이야말로 헌법이 정하는 무죄추정원칙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는 인권 보장을 부르짖으면서 뒤에서는 이를 거스르는 국가의 민낯을 드러낸다.

진정 국민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하루빨리 해당 조항을 과감히 삭제함이 마땅하다. 죄 없는 사람이 더 이상 수사기관 컴퓨터 자판의 조롱거리로 전락하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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