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해외 자본 유출에 대한 규제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푸싱그룹이 무산될 뻔 했던 인도 제약회사 글랜드파머를 결국 인수하기로 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싱그룹이 글랜드파머 지분 74%를 11억 달러(약 약 1조2457억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당초 이 인수 건은 지난해 7월 발표됐으나 인도 정부의 거부로 백지화됐다. WSJ에 따르면 당시 푸싱 측은 13억 달러를 인수액으로 제시했다. 이는 중국 기업이 인도 기업에 제안한 금액 중 최고가였다. 푸싱은 글랜드파머의 지분을 86% 인수하기로 했으나 지난달 자국의 제약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우려한 인도 입법 당국의 규제에 부딪혀 무산됐다. 그러나 인도 당국이 정부의 승인 없이도 외국 제약회사가 자국 제약회사의 지분을 최대 74%까지 취득할 수 있도록 외국인 투자 규정을 완화하면서 인수가 성사됐다. 푸싱은 이번 인수에 인도 내각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으며 미국과 중국 규제기관의 허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푸싱은 미국계 사모투자회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소유한 글랜드파머 지분 38.4%를 인수하고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나머지를 인수할 예정이다. 거래는 몇 주 안에 마무리될 예정이며 글랜드파머의 경영진은 회사에 그대로 남는다. WSJ는 2014년 2억 달러에 글랜드파머의 지분을 사들인 KKR이 2배 이상의 차익을 남길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자국의 자본 유출을 우려해 민간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을 규제해왔다. 당국은 푸싱과 안방보험, 다롄완다그룹 등 대규모 해외 M&A에 적극적이던 기업들을 조사하며 압박했다. 이 때문에 완다그룹은 런던 부동산 인수를 포기하기도 했다.
이번 인수는 기술 확보를 위한 해외 투자는 장려하는 기조 덕분에 중국 당국의 제재 없이 성사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달 부동산·엔터테인먼트·스포츠·영화 등에 대한 투자는 제한하면서도 기술 방면에서 자국 기업의 해외 투자는 장려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자국 의료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육성할 계획이며 자국 제약사들이 신기술 확보에 주력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2011년 4억7400만 달러였던 푸싱의 해외 투자 규모는 지난해 70억 달러로 급증했다. 지난해 푸싱의 매출 113억 달러 중 5분의 1은 제약 사업 부문에서 발생했다.
인도 제약회사들은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의 복제약(제네릭)을 전 세계에 수출하며 제네릭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글랜드파머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제네릭 주사제를 주로 제조하며 미국 푸싱제약에도 납품하고 있다.
외신들은 인도 정부가 이번 글랜드파머 매각으로 인해 자국의 제약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중국과 인도의 영토 분쟁이 치열한 가운데 인수가 성사되면서 인도의 실망은 더욱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