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조조의 승리. 1대 10의 절대적인 열세에서 원소를 패망케 한 조조는 원소의 막사에서 서신 한 다발을 발견한다. 자신의 부하들이 원소와 내통한 편지다. 참모들은 그들을 모두 처단, 배신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자고 주장하나 조조는 고개를 젓는다. “나도 원소에게 겁을 먹었다. 내 생명이 어떻게 될지 몰라 여러 번 마음이 바뀌었다. 그들인들 오죽하랴”라며 편지를 몽땅 불태우라고 명령하곤 다시 거론하지 않았다.
충언(忠言)이 귀에 쓰다며 부하의 목을 베고 감옥에 가둔 원소와는 달리, 참모의 말에 귀 기울이고 필요할 때는 부하에게도 몸을 낮춰 승리를 얻은 조조의 리더십은 배신자들의 편지를 불태울 때 절정이었다. 조조의 경청(傾聽)과 관용이 내부를 더욱 강고히 해 열 배나 강대했던 원소를 물리치고, 그의 후손이 위(魏)·촉(蜀)·오(吳) 등 삼국을 통일하는 밑바탕이 되었음을 누가 부인하겠나.
조조보다 약 400년 전에 태어난 로마의 장군 파비우스 막시무스도 관용과 포용으로 통합을 이뤄 로마가 한니발의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로마의 여러 영웅 중 파비우스만큼 후세의 찬사를 오래도록 받아야 할 사람은 없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이 자세히 전한 그의 행적은 며칠 전 연세대 정치학과 박명림 교수가 한 신문 칼럼에 잘 정리했다. 그 글을 다시 요약해 본다.
<파비우스는 로마 시민이 자신을 비난하고 강경파를 선택한 결과 한니발에게 대패했어도 자신을 비난한 사람과 강경파를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앞장서서 인민들을 위로하며 결국은 로마가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을 고취하기에 바빴다. 그는 숱한 장병들을 잃은 채 도주해온 집정관 테렌티우스 바로도 비난·처벌하지 않고 “그는 로마 시민들과 함께 적을 물리치기 위해 귀환했다”며 환대·위로했다.
자신에게 도전하여 끝내 지휘권을 나눠 가진 미누키우스에게는 “물리쳐야 할 적은 내가 아니라 한니발임을 잊지 마라. 동료와 다툴 필요가 있더라도 언제나 로마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미누키우스가 패배의 위기에 직면하자, 파비우스는 “그는 나라를 사랑한 용감한 전사다. 그가 너무 성급했다고 해도 그것은 차후에 따질 문제”라며 선두에 나서 구출하였다. 로마인 중 파비우스를 반대했다가 파비우스의 품에 안긴 미누키우스는 매우 많았다. 파비우스의 포용으로 하나 된 로마는 외적인 승리의 내적 토대를 굳건히 하였다.>
새해가 되었어도 마음이 무겁다. 길고 긴 적폐청산 때문일 것이다. 일찍 끝냈더라면 이 피로는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적폐청산에 쏟은 에너지의 절반만이라도 통합에 쏟아 넣었더라면 우리의 지금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찌푸린 얼굴, 어두운 마음보다는 미소 띤 얼굴, 밝은 마음이 여기저기서 새해를 함께 맞은 것을 서로서로 진심으로 축복했을 것이다.
이제는 편지를 불태워야 할 때다. 미누키우스들을 껴안아야 할 때다. 상대의 먼지를 탈탈 털려 들지 말고, 그들의 구족(九族)을 멸해야만 분을 풀 수 있다는 느낌도 주지 말아야 한다. 안만 보지 않고 밖을 봐야 한다. 아직 늦은 게 아니다. 그렇지만 이를수록 좋다. 우리의 분열은 우리의 경쟁자와 적에게만 이로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