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하는 부분이다. 대공 수사는 일반 수사와는 다른 특징들이 있다. 그래서 수사의 노하우가 중요하다. 여기에 대해 청와대는 경찰도 대공 수사에 상당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2000년 이후 검거된 간첩의 90%가 국정원의 수사에 의한 것인데, 이는 이런 청와대 측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이런 수치는 대공 수사에 있어, 역시 국정원이 전문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의 노하우 말고 또 문제가 되는 것은, 대공 수사의 특성상 정보 수집과 수사를 분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정보는 수사의 기본인데, 정보와 수사를 분리했을 경우, 정보 수집 기관이 수사 기관에 정보를 넘겨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비밀이 생명인 대공 정보 소스가 노출될 우려가 클 뿐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신속하게 검거하는 것이 생명인 대공 수사의 속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대공 수사의 장애요인으로 등장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이 지적되고 개혁안은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내용적 문제와 현재 정치권의 사정이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즉, 과거 같으면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도움을 받으면 정부 여당의 생각대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과 같이 국민의당이 분열된 상태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의당의 경우, 통합파는 권력 기관 개혁에 대해 바른정당과 호흡을 맞추며 반대할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통합 반대파는 더불어민주당과 호흡을 같이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청와대는 법안 통과를 불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아마도 여론에 직접 호소하며 국회를 압박하는 전략을 쓸 수 있다. 청와대의 개혁에 대한 절박감은 충분히 공감한다. 지금처럼 지지율이 높을 때, 원하는 개혁을 모두 추진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회를 건너뛰고 국민을 직접 상대한다는 것을 현명한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국회가 대의기관이라는 원론적인 얘기는 빼더라도, 국회는 다양한 국민의 의견이 모이는 곳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아무리 높아도, 모든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다 대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칫 소수가 다수의 의견처럼 포장되는 여론 왜곡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청와대가 상대하는 국민이란 핵심 지지층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개혁을 밀어붙이는 것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문제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난관이 있더라도 국회에서 문제가 처리되도록 놔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즉, 국회의 논의 과정에서 설령 원안에 손질이 가해지더라도 일단은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개혁의 진정한 목표가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금과옥조(金科玉條)는 다수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을 제도에 반영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청와대는 잘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이 모여 있는 국회의 의사결정 과정을 끈기 있게 지켜봐야 한다. 설령 본인들의 생각과 의도에 일정 부분 수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