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세종병원의 화재는 응급실 안에 설치된 탕비실 천장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보도를 접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탕비실이 뭐 하는 곳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탕비실은 ‘湯沸室’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끓을(일) 탕’, ‘끓을(일) 비’, ‘집(방) 실’이라고 훈독한다.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끓이는 집(방)’이라는 뜻이다. 순전히 일본어에서 온 말이다.
차를 마시며 유난히도 까다로운 ‘다도(茶道)’를 중시하는 일본에서는 회사나 공공기관에 대부분 차를 우리기 위해 물을 끓여 보급하고 또 찻잔이나 식기 등을 씻을 수 있는 공간을 두는데 이런 공간을 탕비실이라 부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80년대까지는 이 말을 흔히 사용하였다. 기관장의 집무실 곁에 두어 비서들이 차를 준비하는 공간을 탕비실이라 하기도 했고, 화장실 곁에 두어 청소도구를 보관하거나 대걸레를 빨기도 하는 공간을 탕비실이라 불렀다. 차를 준비하는 곳과 청소도구를 보관하는 곳은 완전히 다른 공간인데 같은 이름을 사용하다 보니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차를 준비하는 곳은 ‘준비실’ 혹은 ‘끓는 물을 공급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급탕실(給湯室 給: 줄 급)’이라 부르고, 청소도구를 보관하거나 간단한 세탁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는 공간은 ‘다용도실’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준비실이나 급탕실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대부분 ‘다용도실’이라 일컫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화재가 난 밀양 세종병원의 경우 수요자들에게 뜨거운 물을 공급하고 간단한 설거지도 할 수 있도록 한 공간이라는 뜻에서 전에 사용하던 ‘탕비실’이라는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했던 것 같다.
언론은 병원 측에서 ‘탕비실’이라 부르니 그대로 받아 보도를 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일본어들이 일제의 잔재로 남아 있다. 청산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