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 등에는 ‘이트인’이 마련돼 있다. 원래 영어 ‘eat in’은 집에서 먹는다는 뜻이지만 일본에서는 다르게 쓰인다. 이트인이란 음식점이 아닌 가게에서 구매한 식품을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차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매장 한편에 의자와 테이블 등이 비치돼 있다.
이트인은 쇼핑객이 한숨 쉬어가는 공간으로 시작됐다. 최근에는 카페와 식당을 대신하며 젊은이의 아지트이자 가족 외식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여고생들은 평일 하굣길에 슈퍼에서 산 코코아와 과자를 이트인에서 즐긴다. 토요일 오후에는 부부와 어린 자녀가 마트에서 구입한 초밥과 도시락, 빵 등을 먹는다. 월 1~2회 이트인을 이용한다는 한 가족은 “가족 모두가 편하게 먹을 수 있고 외식보다 저렴하다”고 말했다. 한 30대 주부는 이트인이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예쁘다”면서 “딸과 함께 또는 친구와 쇼핑하는 길에 자주 밥을 먹는다”고 밝혔다.
매장에서 직접 음식을 사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고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게 이트인의 장점이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는 대체로 200엔(약 2000원)대인데 반해 마트에서는 100엔이면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조리된 음식도 100엔부터 시작된다. 초밥과 도시락, 다양한 반찬이 있다.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유명한 식당의 음식이나 디저트를 파는 경우가 많은데 이트인이 마련돼있으면 원래 매장에 가는 것보다 간편하게 고급스러운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기업으로서는 고객의 체류 시간이 길어지며 편의성 덕분에 매출이 늘어난다. 도쿄 내 백화점에 입점한 한 아이스크림 브랜드는 최근 이트인 공간을 만든 후 매출이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
이트인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마트들도 공간을 넓히고 인테리어를 고급화하는 추세다. 그동안은 이트인을 간소하게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소파와 테이블에도 신경을 써 패밀리 레스토랑과 비슷한 분위기로 꾸미고 있다. 일본슈퍼마켓협회 등 업계 3개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이트인을 설치한 기업은 지난해 기준 회원사의 65.1%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협회는 전체 98개 매장 중 80곳 이상에 이트인을 설치하며 숫자를 더 늘려갈 계획이다. 일본 대형 슈퍼체인 ‘이온’은 50석 이상의 이트인을 마련한 식품 매장을 2020년까지 2016년 대비 2배인 약 150개로 늘린다.
이트인 이용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어려운 가계 사정도 한몫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실질임금은 전년 대비 0.2% 줄어 2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명목임금은 증가했지만 소비자 물가의 상승이 임금 상승효과를 억제한 탓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트인 애용 현상은 싸고 편리하며 쾌적한 것을 원하는 소비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