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교수 34년, 그 시작과 끝

입력 2018-03-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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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명예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1984년 대학 교수가 되었다. 미국 유학을 막 마치고 돌아온 만 서른의 나이였다. 그로부터 34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2월 28일 마감했다. 정년을 1년 반 남겨 둔 상태였다.

때가 때인지라 서울시장에 출마하기 위해서인가 묻기도 하는데 그와는 관련이 없다. 젊은 시절부터 60이 넘으면 ‘바구니’를 비우고, 그것이 무엇이건 새로운 뭔가를 담아 보겠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몇 차례 사의를 표하기도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그만두곤 했다. 오히려 계획보다 몇 년 늦은 셈이다.

사직서를 쓰는 순간 대학에 첫발을 디디던 때가 생각났다. 지방 국립대학이었는데, 학교는 반정부 시위로 조용한 날이 없었다. 강의 이외에 받은 첫 임무가 시위 장소에 나가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나간들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그냥 우두커니 서 있는 게 다였다.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얼마 뒤 시위를 주동하는 학생을 지도학생으로 ‘특별히’ 배정받았다. 매달 어떻게 지도했는지 보고서를 제출해 달라고 했다. 한 번도 제출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외부기관의 간부 한 사람이 찾아와 돈 봉투를 내밀었다. 그 학생의 부모를 만나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거절했다. 그가 불편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솔직히 두려웠다.

그러던 중 행정 직원 한 명이 ‘교통지도위원증’이란 것을 가져왔다. 뭐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하는 말, 교통위반에 걸리면 그걸 제시하란다. 실제로 한번 해 보았다. 그랬더니 단속을 하던 순경이 거수경례한 뒤 그냥 가라고 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운 마음에 바로 버렸다.

한심하고 두렵고 부끄럽고……. 교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가 생각났다. 현자(賢者) 필론을 태운 배가 큰 폭풍우를 만났다. 모두 우왕좌왕, 아수라장이 되었건만 바닥에 누운 돼지 한 마리는 세상모른 채 자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필론, 그는 그 돼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1986년 국민대학교로 옮기며 바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시민단체 보직을 맡고, 학내 민주화 어쩌고 하다 전국 교수협의회 공동 회장도 하게 됐다. 또 분권 운동을 하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정부 일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안에서, 밖에서 대학을 보았다. 독재 권력으로부터 해방이 되면 무언가 크게 달라질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더 어렵고 더 근본적인 문제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오히려 걱정은 더해갔다.

무엇보다 대학이 지식 생산거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가는 것 같았다. 이를 테면 경영이론은 기업의 경영 일선에서, 전자기술은 전자회사의 생산 현장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평범한 주부 출신의 ‘아줌마 철학자’가 철학 교수를 비판하는 책을 쓰기도 했다. 시장과 산업이 발달하고 정보통신이 발달하면서 생기기 시작한 현상이었다.

지식이 유통되는 유통거점으로서의 지위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수많은 강의가 온라인 공개 수업, 즉 무크(MOOC) 등을 통해 유통되는 등 대학을 가지 않고서도 좋은 강의를 듣고 양질의 지식을 얻을 기회가 무한대로 열리고 있다.

왜 대학을 가느냐? 필요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교양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졸업장과 학위를 받기 위해서이다. 교수로서 정말 아팠다.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학위를 주는 권한, 그것 하나로 그 비싼 등록금으로 주는 월급을 받으며 버티고 있다니.

대학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식의 생산거점으로, 또 유통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심각한 재정난에 교수들의 급여는 몇 년씩 동결이 되고 수많은 계약직 교수들은 대기업 신입사원보다 못한 연봉을 받기도 한다. 등록금은 많고, 연구 환경과 학습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퇴임 강연을 마친 뒤 학생들과 교수들이 인사를 한다. 마음속으로 답례를 했다. ‘미안하다. 교수로서, 또 선배로서 미안하다.’ 34년의 세월을 보냈건만 여전히 한심하고 두렵고 부끄럽다. 또 다른 이유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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