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로 신약을 개발하는 A기업은 지난해 연구개발 투자를 최소화해 영업손실을 면하는데 성공했다. 신약개발이 실패했거나 파이프라인을 재정비하기로 해서가 아니다. 우회상장한 A기업은 재작년까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해 코스닥 관리종목(4년 연속 적자시)으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회사 관계자는 "결국 소규모 흑자를 달성해 관리종목 지정의 위험을 벗었다"면서 "올해는 연구개발 비용을 적극 집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신약개발 코스닥 상장사인 B기업은 최근 인수할 건강기능식품 기업 찾기에 여념이 없다. 이 회사 역시 건강기능식품업으로 사업을 넓히거나 전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상장 6년째를 맞는 내년부터는 연 30억원 미만 매출을 기록할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다. 회사 관계자는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사업을 확보해야 신약개발에도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연구개발(R&D) 비용을 자산으로 처리해온 국내 일부 바이오·제약기업 관행을 문제 삼으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차바이오텍이 연구개발비를 자산에서 비용으로 전환하면서 4년 연속 영업적자로 인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됐고 제넥신 바이로메드 등 다수 바이오·제약기업은 회계기준 조정으로 수익성 악화를 피할수 없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기업들이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회계 관행을 악용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러한 관행의 근간에는 연구개발 특히 신약개발 기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까다로운 코스닥 상장 유지조건이 있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연구개발비 회계처리에 대한 금융당국의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한 신약개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코스닥시장 퇴출 요건 중 대표적인 것은 매출액과 장기영업손실 규정이다. 매출액의 경우 30억원 미만일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2년 연속이면 퇴출된다. 다만 기술성장기업(기술특례 상장기업), 이익미실현기업은 상장후 5년까지는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장기영업손실의 경우 4년 연속 영업손실시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 또다시 영업손실을 기록하면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된다. 다만 기술성장기업은 이러한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차바이오텍은 2008년 코스닥 상장법인인 디오스텍을 통해 우회상장한 탓에 장기영업손실 규정을 적용받은 것이다.
매출액 규정 역시 기업이 핵심사업보다는 부대사업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왜곡 현상을 초래한다. 실제로 많은 상장 바이오텍들이 건강기능식품, 의료기기, IT 유통업 등을 부대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상당수가 연 30억원 이상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상장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다. 바이오텍 상장사 관계자는 "소규모 바이오벤처가 매출 때문에 어쩔수 없이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 결국 힘의 분산으로 핵심 사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영업손실이나 매출규정은 완화하고 회사의 가치(액면가 이하시 관리종목 지정 등) 등을 반영한 코스닥 시장 퇴출 요건 보완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번 연구개발비 회계 처리 논란으로 인해 바이오텍의 연구개발비 처리 관행이 개선되고 재무구조도 투명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올해 상장을 추진하는 바이오기업 대표는 "연구개발비의 대부분은 비용으로 처리했지만 임상이 마무리되는 파이프라인의 연구개발비는 일부 자산으로 처리했다"면서 "전부 비용으로 처리하면 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 혹은 성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처럼 비칠까봐 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대부분이 실패없이 개발이 완료됐는데 이를 신약의 성공 가능성에 맞춰 자산/비용 처리하는 것은 불합리할 수 있다"면서 "정부가 혼란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