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심의 ‘생쥐머리 새우깡’에 이어 동원F&B의 참치캔에서 커터 칼날, 녹차제품에서는 부유물로 보이는 이물질이 나오는 등 먹거리 안전 문제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문제 제품에 대한 경위조사에 나선데다 식품 이물질 혼입 사례가 계속 터져나오면서 다른 식품업체들도 비상체제에 돌입하는 등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식품내 이물질, 소비자 민원의 전통적 주제"
실제로 식품 속 이물질 관련 민원은 그동안 비일비재 했다. 한국소비자원이나 소비자단체 게시판에는 라면, 과자, 음료수 등 가공식품에서 벌레, 비닐 또는 플라스틱 불순물 등이 나왔다는 제보 및 상담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는 지난 21일 배포한 자료를 통해 "가공식품 내 이물질은 오랜 소비자민원의 주제였다"며 "2007년 8월부터 올 1월까지 6개월간 가공식품 안전위생 관련 소비자상담 1980건 중 54%인 1071건이 '식품 내 이물질'에 관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발견된 이물질은 모기 등 곤충류가 제일 많았고 이밖에 유리조각, 담배꽁초, 머리카락, 쇳조각 등이다.
하지만 이번에 농심의 '생쥐머리 새우깡' 사건이 큰 사회적 파장을 가져오자 다른 식품회사 제품의 이물질 혼입 사례들도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식품업체들, "나 지금 떨고 있니?"
24일 식약청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식약청은 농심과 동원F&B 제품 각 2건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여 경위를 파악에 나섰다. 조사대상 제품은 애벌레가 생겼다는 주장이 제기된 농심의 용기라면과 컨베이어 벨트 조각이 나왔다는 농심의 쌀과자, 곰팡이가 발견된 동원F&B의 즉석밥, 녹조류가 발견됐다는 민원이 제기된 녹차 등 4건이다.
이에 각 식품업체들은 '고객관리센터'에 비상 체제 돌입을 지시하는 등 고객민원 상담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다. 통상적으로 불순물 혼입 등의 경우 소비자보호법 등 관련 기준에 따른 보상을 해주고는 있지만 소비자가 사건을 확대(?)시킬 것을 우려해서다.
A 식품업체는 고객관리에 대한 기존 매뉴얼 점검 및 상담 업무 강화에 나섰다. 이 업체 관계자는 "농심을 계기로 소소한 이물질 혼입 사례까지 크게 이슈화 되고 있어 무쩍 신경이 쓰인다"며 "고객 민원에 귀 기울이고 고객의 불만이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B 식품업체는 최근 들어 주말에도 고객관리센터를 비상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생산공장에서는 원부자재를 좀 더 세심히 살피는 등 품질관리를 강화하고 있고 민원상담 건수가 적은 주말에도 고객관리센터 당직자 수를 늘렸다"고 말했다.
C 식품업체는 '특별점검 기간'을 정해 작업장 뿐 아니라 협력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에도 적극 나섰다. 업체 관계자는 "평소에도 안전에는 최대한 신경을 쓰지만 현재는 특히 민감한 시기라 더욱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체의 '안일한 대처'와 극소수 블랙컨슈머도 문제
통상적으로 식품업체들은 이물질 신고가 접수되면 소비자피해보상 규정에 따라 해당 소비자에게 교환이나 환불을 해주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한다. 어떻게 이물질이 혼입됐는지 파악하고 공정상의 개선책을 강구하기 보다는 '입막음'에 전전긍긍했다는 말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에는 이물질로 인한 '정신적 피해' 보상 대한 규정이 없어 이를 개정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소비자시민모임 김정자 실장은 “변질되거나 이물질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탈이 나거나 정신적 피해로 후유증을 겪어도 소비자가 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비자의 입원이나 사망, 집단 식중독 등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사건 자체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극히 일부의 불량소비자(블랙컨슈머)들도 문제다. 이들은 자신의 제보가 인터넷에 유포되거나 언론에 보도될 경우 업체가 타격을 우려해 약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악용해 업체로부터 금전적 보상을 받아내려 한다.
한 식품업체는 지난해 제기된 소비자 민원 중 10여건이 이같은 블랙컨슈머에 의한 것임을 입증했다.
불량식품임이 입증돼도 보상액을 놓고 소비자와 업체가 마찰을 빚는 경우도 많다. '쥐머리 새우깡'을 제보한 소비자는 농심에 무려 5000만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D사 라면에서 지렁이를 발견한 한 소비자는 5000만원의 위자료 청구소를 제기했고 법원은 액수가 과다하다며 치료비 68만원과 위자료 250만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4일 광주광역시에 벌어졌던 '죽은 지렁이 빵' 사건은 해당 업체가 생산을 중단하고 시중 제품을 모두 회수했으나 제보자가 돌연 "봉지를 개봉한 뒤 바닥에 놔둔 사이 지렁이가 들어간 것 같다"고 말을 바꾸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이 일부 방송에 보도되는 바람에 이 기업은 이미 기업 이미지에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국내 300개 업체를 대상으로 '소비자 관련 애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조사 업체 중 87.1%가 고객들의 부당한 요구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편 식약청은 이처럼 잇달아 먹거리에 대한 국민 불안이 높아지자 이번주 내로 이물질 혼입이 업체에 제보되면 업체가 식약청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방안 등을 포함한 다각적인 식품안전강화대책을 수립해 내놓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