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용시장은 일손 부족을 호소할 만큼 완전 고용 상태를 나타낸다. 일본의 실업률은 지난 1월 2.4%를 기록해 24년 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잃어버린 10년을 딛고 일어난 일본 경제가 완연한 호황기에 접어들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실질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으며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지속 가능한 성장은 난망하다. 대다수 일본인이 일본 역사상 최고의 경제 호황기는 이미 끝났다고 여기는 이유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는 내수 진작으로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고자 한다. 작년에 아베 정부가 정부 부처와 기업들을 대상으로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전격 시행한 것도 이를 위해서였다. 이 제도는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3시 조기 퇴근하도록 해 쇼핑과 여가를 갖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일본 젊은이들이 적극적인 소비 주체로 떠오르지 않아서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가 작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젊은이들의 지출을 막는 가장 큰 요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나타났다. 20대 응답자 중 5분의 4는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원한다고 답했으며 지금과 같이 임금이 정체되고 비정규직이 많은 상황에서는 안정된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요헤이 하라다 연구원은 “오늘날 젊은이들은 자신의 미래에 불안을 느낀다”며 “안정적인 직업이라 여겨지는 공무원이 인기를 얻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를 그리워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심리는 대중문화에 복고 바람을 불러왔다. 일본에서 한창 활동 중인 가수 여성 듀오 ‘베드 인’은 80년대 가수를 소환했다. 큰 어깨 패드, 미니스커트 등 패션뿐 아니라 전자 드럼 등을 사용한 음악도 80년대 분위기를 재현한다. 베드 인의 멤버 마스코데라 가오리(32)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거품경제 시대를 부정적인 유산으로 여겼다”며 “그러나 지난 몇 년간 그런 기류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사람들은 거품경제 시대를 멋졌던 시기라고 회상한다”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 도미오카 고교 댄스팀 TDC도 80년대를 재현해 전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40명의 여고생은 화려하게 색조 화장을 하고 반짝이 의상을 입은 채 군무를 선보인다. TDC는 제10회 일본 고교댄스부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관련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 5000만을 돌파했다. 얼마 전 국내 개그맨 송은이, 신봉선, 안영미, 김신영, 김영희가 프로젝트 걸그룹 ‘셀럽파이브’라는 이름으로 TDC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80년대 대중문화 상징인 디스코 클럽도 일본에서 부활했다. 디스코 클럽 체인인 ‘마하라자(대왕)’는 5년 전부터 다시 문을 열어 도쿄, 나고야 등 일본 전역에 매장을 냈다. 베이비붐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에게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인기라고 NYT는 전했다.
이벤트 업체도 80년대의 사치스러움을 체험하는 서비스를 내놓아 눈길을 끈다. 이벤트 업체 애니플라는 디자이너 드레스를 입고 도쿄 거리에서 리무진을 1시간 동안 타는 서비스를 내놨다. 비용은 1인당 60달러다. 애니플라는 지난 몇 년간 리무진 대여가 가장 인기 있는 서비스로 등극했다고 밝혔다.
NYT는 도쿄 거리에서 이 이벤트를 체험하는 6명의 여대생을 만났다. 그 중 한 명인 미치구 아야미(20)는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며 “부모님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아직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