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글로벌 무역 전쟁 속에서 내부 혼선을 빚으면서 제 발등을 찍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7~18일 워싱턴에서 치러진 2차 고위급 무역 협상을 놓고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정반대의 성명이 나왔다. 대중 무역에서 비교적 온건한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무역 전쟁을 중단하고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연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고 양국은 새로운 틀에 동의했다”며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보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몇 시간 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므누신의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성명을 내놨다. 라이트하이저는 “중국이 무역에 실질적인 구조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한 미 행정부는 여전히 투자 제한 및 수출 규제를 비롯한 수단에 더해 관세를 부과할 의지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라이트하이저는 노련한 무역 협상가이자 대중 강경 노선을 고수하는 인물이다. 그는 “수천만 미국인의 일자리가 위험에 처해있다”며 “중국의 실질적인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므누신은 미국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를 실질적으로 줄이는 협상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류허 중국 부총리가 이끄는 협상단과 담판 직후 므누신은 “중국은 미국의 상품과 서비스 구매를 ‘현저히’ 늘리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라이트하이저는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라이트하이저는 “중국이 미국의 서비스와 상품을 더 많이 사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쟁점은 지식재산권보호, 사이버 절도와 같은 문제”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혼재된 신호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무역 의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무역 협상을 하면서도 캐나다, 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을 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 관세 폭탄을 부과했고, 유럽연합(EU)에 대해선 이를 다음 달 1일까지 유예했다.
도널드 존슨 전 USTR 대표는 미 행정부 내 충돌이 미국의 무역 협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존슨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류허 부총리의 입장은 같다”며 “반면 우리 쪽은 너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무느신과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협상파이지만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강경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나바로는 베이징에서 열린 1차 미·중 무역 협상 때 므누신과 갈등을 빚었고, 그 과정에서 고성과 욕설까지 오갔다.
한편 2차 무역 협상에서 중국은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상품과 미국산 상품과 서비스 구매를 대폭 늘리기로 했으나 성명에서 구체적인 수치는 담지 않았다. 므누신 장관도 중국이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2000억 달러(약 216조4000억 원)로 설정했는지 밝히는 것은 거부했다. 2000억 달러는 앞서 미국이 중국을 향해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줄이라고 주장하면서 제시했던 수치다. 미국은 중국에 구체적인 협의를 위해 실무팀을 파견할 예정이다.
므누신은 산업 내에서 목표는 설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함께 농업 분야에서 큰 진전이 있기를 바라고 있다”며 “올 한 해 농업 수출액은 전년 대비 35~40%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에너지 수출액도 두 배가 될 것”이라며 “향후 3~5년간 연간 500~600억 달러의 에너지 수출액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