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닥터 지바고-문제는 사랑이야, 이 사람들아!

입력 2018-05-3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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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가 왜 이리도 좋으냐? 너무 멋있는 영화 아니냐? 남주(요즘 젊은이들은 남자주연을 이렇게 줄여서 쓰더라) 오마 샤리프와 여주 줄리 크리스티, 둘 다 너무 멋있지 않냐? 우랄산맥 아래 온통 눈이 하얗게 덮인 러시아의 광대한 평원! 화면 가득 펼쳐진 봄날의 유채꽃밭! 배경도 멋지지. 음악은 또 어떻고. ‘라라의 테마’가 수시로 흐르지만 지루한 걸 모르겠더라. 3시간이 금세 지나갔어. 이런 영화가 왜 또 안 나오나 몰라.

영화 나온 게 언젠데 ‘닥터 지바고’ 타령이냐고? 얼마 전에 끝난 뮤지컬 ‘닥터 지바고’ 때문이야.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 앉아 뮤지컬을 보다가 영화 ‘닥터 지바고’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났어. 그래서 다운로드해 TV로 봤지.

영화고 뮤지컬이고 간에 ‘닥터 지바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위해 설명 좀 하라고? 그러지 뭐. 영화든 뮤지컬이든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 문인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가 1958년에 낸 소설이 원작이야. 볼셰비키 혁명이 터진 1917년 전후의 러시아가 배경이지. 의사이자 시인인 지바고가 주인공인데, 혁명이나 이념보다는 인간이 먼저라고 믿고 시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지. 아내와 아들 등 가족과 행복하게 살다가 의사가 필요한 볼셰비키 군대에 끌려간 지바고는 예전에 우연히 본 적 있는 라라가 야전병원에서 자신처럼 헌신적으로 부상병을 치료하는 것을 보게 되지. 둘의 이 만남은 사랑으로 연결되는데, 그 사랑은 혁명의 여파 속에서 깨져. 지바고는 가족도, 라라도 없는 곳에서 쓸쓸히 죽고 ….

이런 줄거리인데, 소설은 러시아(소련)가 아니라 원고가 밀반출된 이탈리아에서 출간됐지. 소설은 작품성도 뛰어났지만 소련 공산주의 정권이 러시아 혁명의 비인간성을 비판하는 내용이라며 출간을 방해하고, 1959년 파스테르나크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상을 못 받도록 압력을 가한 바람에 금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어. 소련이 ‘닥터 지바고’의 홍보대사 노릇을 한 거라.

영화는 1966년에 나왔는데, 역대 흥행수입 8위가 될 정도로 대성공했고, 우리나라에서도 1967년 첫 개봉된 이래 여러 차례 다시 개봉될 만큼 인기가 높았어. “영화가 원작보다 훨씬 낫다”며 예닐곱 번 본 사람도 많아.

1968년에 나는 지바고를 보러 갔지만, 정작 본 것은 이웃 극장의 딴 영화였다네. 지바고 대신 본 영화는 당시 세계 최고의 육체파 배우였던 라켈 웰치가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원시 시대의 여성 전사로 나오는 ‘공룡 100만년’이었어. 지바고를 보면서 지고지순하고 영원한 사랑에 감동했어야 할 사춘기의 내 고상한 정신이 포스터 속에 반(半)의 반라(半裸)로 나타난 라켈 웰치에게 한순간에 마비됐던 거야. 그 이후 지바고는 TV 주말영화에서 틀어주면 중간에서 보다 말다 한 게 전부였는데, 이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거지.

▲영화 ‘닥터 지바고’ 포스터.
▲영화 ‘닥터 지바고’ 포스터.
그런데 ‘닥터 지바고’는 왜 이리 좋으냐? 영화나 소설의 무엇이 좋아서 그렇게 인기를 끌고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2018년의 한국 젊은이들까지 감동시켰냐? ‘사랑’ 말고 뭐겠어. 195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베르 카뮈(1913~1960)는 이런 말을 했더군. “닥터 지바고는 사랑의 책이다. 모든 인간에게로 널리 퍼지는 그런 사랑의 책이다. 의사는 아내를, 라라를, 또 다른 사람들을, 러시아를 사랑한다. 그는 아내와 라라와 러시아와 그 밖의 것들과 헤어져 있기 때문에 죽는다. … .” 이런 말을 한 사람도 있네. “이 위대한 사랑의 책은 그 어떤 당파에 무언가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 책은 보편적, 범세계적이다.”

맞아, 사랑만큼 보편적이고 범세계적인 게 뭐가 있겠어. ‘닥터 지바고’는 때리고 부수고 죽이고 증오하고 대립시키고, 끝내는 분열시키는 요즘 영화와는 다르지. 지바고 같은 위대한 사랑의 영화는 매일 봐도 좋겠어. 이제 나도 예닐곱 번은 더 볼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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