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는 스타트업이 성장을 지속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현상을 ‘킬존’이라고 표현했다. 페이스북과 구글, 아마존 등 거대 IT기업들이 온라인검색과 메신저, 전자상거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스타트업이 진입할 수 있는 틈이 적어지자 생존 가능성이 줄어든 것이다. 이들 기업이 온라인과 모바일 플랫폼을 지배하고 있어 스타트업을 향한 인수 압박도 심각하다.
킬존 형성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킬존을 만드는 첫 번째 요인은 대기업들의 데이터 수집능력이다. 구글은 크롬과 안드로이드를 통해 사용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고,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서비스와 클라우드 사업으로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기업들은 유망 사업을 파악하고 경쟁 스타트업의 등장을 막을 수 있다.
대기업들이 시장 정보를 얻는 방식은 또 있다. 바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파악하고 혁신기업의 등장을 예견하는 것이다. 특히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은 스타트업 투자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으며 2013년부터 지금까지 총 126억 달러(약 13조5000억 원)를 투입했다.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 우버는 한때 알파벳의 벤처 투자 자금지원을 받았지만, 현재는 알파벳의 자율주행차 자회사인 웨이모와 경쟁하는 등 스타트업이 투자회사와 경쟁하는 사례도 있다.
킬존을 구축하는 두 번째 요소는 대기업들의 인재 유치 능력이다. 그들은 업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알파벳과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MS는 지난해 스톡옵션에 총 237억 달러를 투입했다. 대기업은 임직원들에게 주식으로 보상을 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재를 묶어둘 수 있지만,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으로서는 인재 영입조차 힘들다. 마이크 볼피 인덱스벤처스 파트너는 “인덱스벤처스의 포트폴리오에 올라와 있는 스타트업들은 최근 연간 고용 목표의 10~20%밖에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플랫폼 등장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도 킬존 형성의 원인 중 하나다. 90년대 MS의 독주를 막았던 것은 모바일 플랫폼의 등장이었으나 그 뒤로 10년이 넘게 이렇다 할 혁신적인 플랫폼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대기업들이 새로운 앱과 서비스 제공에 막대한 비용을 내고 있어 새로운 플랫폼이 나오더라도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타트업들이 염불보단 잿밥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아제이 로얀 미스릴캐피털매니지먼트 공동창업자는 “스타트업의 90%가 성장이 아닌 인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며 “스타트업 설립자들이 인수·합병(M&A) 이후 확보한 자본으로 또 다른 기술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