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은 지난해 11월부터 8개월간 전국 6개 시중은행의 채용 비리에 대해 수사한 결과 업무방해 등 혐의로 12명을 구속기소 하고 26명을 불구속기소 했다고 17일 밝혔다. 남녀를 차별해 채용한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 법인도 양벌규정에 따라 기소됐다.
은행권 채용 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인물 중 은행장급은 함영주 하나은행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성세환 전 부산은행장,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이 포함됐다. 일선 인사부서는 물론 최고위층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은행권 채용의 신뢰도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외부인뿐 아니라 내부 임직원도 '청탁 만연'= 검찰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지난해 10월 우리은행, 올해 1월 하나은행, 국민은행, BNK부산은행, DGB대구은행, 광주은행 등 6개 시중은행의 채용 비리 수사참고 자료를 받았다. 지방검찰청별로 사건을 배당한 검찰은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검찰은 지난 5월 넘겨받은 신한은행 등 신한금융에 대한 채용 비리 사건도 현재 수사 중이다.
검찰에 따르면 은행권 채용 비리 유형은 크게 △인사부서 개입 △외부인 및 임직원 자녀 청탁 △성ㆍ학력 차별 △로비 도구 활용 등 네 가지다.
특히 이들 시중은행 인사 담당자들은 은행장 등을 비롯한 상급자나 지인, 중요 거래처로부터 채용 관련 청탁이 들어오면 별도로 '청탁 명단'을 작성해 전형 단계별로 합격 여부 등을 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류전형 무조건 통과…국민銀 자발적 점수 조작= 검찰에 따르면 기소 대상 건수가 가장 많은 은행은 국민은행(368건)이다. 하나은행(239건), 우리은행(37건), 대구은행ㆍ광주은행(각 24건), 부산은행(3건)이 뒤를 이었다. 채용 비리 혐의로 기소된 인원은 부산은행 10명, 대구은행 8명, 하나은행 7명, 우리은행 6명, 국민은행 5명, 광주은행 4명 등이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 은행 대부분은 추천이나 청탁자의 자녀들이 탈락 대상인 경우 점수를 수정하거나 감점 사유를 삭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합격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의 경우 서류전형은 무조건 통과시켰다.
국민은행의 경우 A 채용팀장이 한 여성 지원자를 평소 이름을 알고 있던 B 부행장의 자녀인 줄로 착각하고 논술점수를 조작해 합격시켰다가, 오인한 사실을 깨닫자 이후 면접에서 탈락시킨 일이 있었다. 특히 A 팀장은 B 부행장이 청탁하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은행은 또 2015년 신입 행원 채용에서 서류전형 결과 여성 합격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자 등급점수를 조정해 남성 지원자 113명을 합격시키고 여성지원자 112명을 불합격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특정 지원자 채용, 성차별 중복 점수 조작 '다반사'= 하나은행은 청탁 대상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애초 채용공고에 없던 ‘해외대학 출신’ 전형을 별도로 신설해 하위권으로 불합격 대상이던 2명을 채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나은행은 2013~2016년 신입 행원 채용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남녀 채용비율을 4대 1로 사전에 설정해 성별에 따라 별도의 합격선을 적용하기도 했다. 2013년과 2016년 신입 행원 공채에서는 불합격권에 있던 이른바 상위권 대학교 출신 지원자 17명 부정 채용했다.
우리은행은 2015년에 청탁받은 전 국정원 간부의 딸을 재합격시키는 과정에서 서류전형 점수를 조작해 최종 합격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은행은 은행장이 주요 거래처 자녀에 대한 채용 지시를 내리자 가짜 보훈번호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영업지원직(보훈특채) 채용절차를 통해 합격시켰다. 부산은행의 경우 도(道)금고 유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계 인사로부터 딸에 대한 채용 청탁을 받고 서류전형, 필기시험점수, 실무자 면접, 최종면접 점수 등 모든 단계에서의 점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