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검색창에 ‘창피한 줄’이라는 검색어를 넣어 봤더니 ‘부끄럽고 창피한 줄도 모르는 정치인’이라는 블로그 칼럼이 몇 개 떴다.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부끄럽고 창피한 줄을 모르는 인물군의 대표적인 예가 정치인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에 잠시 씁쓸했다.
그러다가 이내 우리 국민들이 정치인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에 실망도 그만큼 컸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나부터 자신을 돌아보는 도덕적 잣대를 보다 더 엄하게 설정하여 작은 잘못에도 크게 창피한 줄 알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창피는 猖披라고 쓰며 각 글자는 ‘미쳐 날뛸 창’, ‘헤칠 피, 걸칠 피’라고 훈독한다. 국어사전은 ‘창피하다’를 “체면이 깎이는 일이나 아니꼬운 일을 당하여 부끄럽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猖披의 ‘猖’을 보면 글자의 구조가 ‘개 견(=犬)에 ’창성할 창(昌)‘을 합한 형태이다. 개가 기운이 창성하여 날뛰는 모양을 나타낸 글자다. 그러므로 猖披는 개가 미친 듯이 기운이 창성하여 날뛰는[猖] 사이를 헤쳐 나가거나[披] 그렇게 미쳐 날뛰는 상황이 다 내 몸에 걸쳐지는(연루되는) 상황을 이르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나 스스로 저지른 일로 창피하다면 미쳐 날뛰는 개의 상황을 나 스스로 내 몸에 걸친 것이고, 남이 저지른 일로 인해 내가 창피를 당해야 한다면 미쳐 날뛰는 개들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나의 잘못으로 창피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조심하고 절제하고 겸손해야 한다. 남으로 인하여 내가 창피를 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친족이나 국가의 지도자급에 있던 사람들이 저지른 일로 인해서 생긴다. 부모로서 형제자매로서 친족 관리도 잘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지도자들에 대한 감시와 경계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더 이상 감옥에 갇히는 불행한 대통령이 나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외국 대하기에 너무 창피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