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일각에서 국민연금공단에 특정 대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할 것을 요구하면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논란이 한창이다. 국민연금이 정부 입김에 좌우될 수 있다는 ‘연금사회주의’ 관련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기금운용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만큼 자본시장 외풍이 불가피하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주주권 강화 행보에 정치권 숟가락 얹기 = 보건복지부는 이르면 7월 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안건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의 선관주의 의무를 강화하기 위한 행동지침이다. 주주권 행사 방법으로는 사외이사와 감사 추천, 주주대표 소송, 경영진 면담 등이 검토되고 있다.
자본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10%를 넘는 상장사는 98곳이다. 코스피 상장사 89곳, 코스닥 상장사 9곳이다. 지분율 5% 이상으로 범위를 확대해 보면 299곳에 달한다.
민감한 상황에서 정치권의 포스코 CEO 선임 문제에 대한 국민연금의 개입 요구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취지에 대한 의문으로 번졌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5월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이 1대 주주인데 포피아(포스코+마피아)에 의해 벌어지는 이런 상황에서 개입을 하지 않는 게 타당한가”라고 지적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국민기업 포스코의 CEO 리스크 해소를 위한 국민연금의 역할’ 토론회를 개최했다. 국민연금이 최근 대한항공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주주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했다.
◇독립성 원칙 못 세우면 감시인 맡으라 =시장에서는 기금운용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기본 원칙부터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다른 나라의 연기금들은 자문사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도 많고 자체적으로 결정을 내린다”며 “재벌개혁 등 정치적 동기가 아닌 주주(국민) 이익 확대에 초점을 맞춘 중립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에 참여한 박경서 고려대 교수는 “코드 도입 초기 일부 잘못된 악용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국내 기업의 잘못된 지배구조 관행 개선 효과는 훨씬 막대할 전망”이라며 “권력자가 개인적 이익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한다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다수 국민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성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민간 자산운용사들에 의결권 행사를 위탁하고 감시인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거나 이해 상충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운용사들을 시장에서 퇴출해 엄격한 관리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