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날 0시 1분부터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확정한 중국산 수입품 279개 품목에 대해 25% 관세 부과를 개시했다. 무역법 301조에 따라 지난달 6일 발효한 340억 달러 규모 관세에 이은 추가 조치이다. 이번 관세 대상에는 중국 정부의 첨단산업 육성 정책인 ‘중국제조 2025’에 해당하는 반도체와 전자 부품, 화학제품, 플라스틱 등과 오토바이, 전기 스쿠터 등이 포함됐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소식이 전해지자 담화를 통해 “중국은 이에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관세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WTO에 이번 관세 문제를 제소할 것”이라 경고했다. 중국이 보복 관세를 발효한 160억 달러 상당 333가지 미국산 수입품에는 석탄과 구리, 원유, 철강, 의료장비 등이 포함됐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 대결’ 수위가 높아질수록 양국 기업의 부담은 커진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번 관세 부과 대상에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하는 장비와 부품 등이 올랐기 때문이다.
미국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중국산 수입 반도체의 약 60%는 미국 기업이 설계하고 있으며 부가가치가 낮은 조립 등의 후 공정만 중국 업체에 맡긴다. 미국은 이를 재수입해 수출하고 있다. 분업 체제로 인해 일본과 한국, 대만에서 고급 공정을 거친 후 중국에서 조립된 반도체도 중국산으로 미국에 수출된다. 지난해 미국이 수입한 메모리 중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로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최대 공급처이다.
관세 부담이 커져도 공급망을 다시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과 대만, 유럽 기업이 중국을 거점 삼아 미국에 반도체를 수출하면서 그물망처럼 복잡한 공급망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을 상쇄하려 생산 공장이나 사용 부품을 바꾸면 품질을 재확인하고 고객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미국에 공장을 세울 때도 관세만큼의 비용이 추가된다.
모리야마 히사시 JP모건 수석 애널리스트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지연되면 미국서 반도체가 부족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이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제재를 발효했으나 미국 기업도 피해를 볼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조립 공장들도 일거리를 잃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 “기업의 투자를 억제하고 공급망을 파괴해 신기술의 보급을 지연하고 생산성을 저하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무역 갈등이 봉합되리라는 전망은 밝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당국자들은 22일부터 이틀간 워싱턴 D.C.에서 4차 무역협상에 들어갔다. CNBC는 당국자들이 한 자리에서 만났으나 쉬운 타협을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양측의 강경론이 강해 합의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며 갈등이 더욱 깊어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기전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그는 앞서 5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 행정부는 중국이 보복 조치에 나선다면 2000억 달러 규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