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올드 보이들의 귀환 - 솔선수범, 자기희생 각오는 있나?

입력 2018-09-05 10:43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황개(黃蓋), 황충(黃忠), 엄안(嚴顔)은 삼국지에 나오는 늙은 장수들이다. 이 올드 보이 세 명이 내 기억 저 아래에서 뛰쳐나와 자기들 이야기를 좀 써보라고 부추겼다.

황개는 오나라 장수다. 창업자 손견과 그의 장남 손책, 둘째 아들 손권까지 3대를 내리 봉사한 노신(老臣)이다. 그의 인품과 활약은 삼국지 적벽대전(赤壁大戰) 장면에 나온다. 조조의 백만 대군이 ‘범 같은 기세로’ 오나라를 치러 오자 이미 조조에게 쫓기고 있던 촉나라의 군사(君師) 제갈량이 오와 촉이 연합해 조조에 맞서자고 설득하러 오나라를 찾는다. 오의 문관과 장수들은 “전쟁을 부추겨 우리를 위험에 빠트리려 한다. 항복하는 게 옳다”며 제갈량을 돌아가며 공격한다.

이때 황개가 나타난다. 그는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경계에 와 있는데, 적을 물리칠 생각은 하지 않고 공연히 입싸움만 할 것이오?”라고 일갈, 경험도 경륜도 없는 오나라 엘리트들의 입을 다물게 한다.

전투가 눈앞에 다가오자 황개는 아들뻘인 젊은 상관 주유를 찾아가 조조에게 거짓 항복하는 계획을 내놓는다. 주유는 그에게 “그대가 고통을 겪지 않으면 조조가 믿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하지만 황개는 “나는 손씨(손권의 집안)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은 몸, 이제 (배를 갈라) 오장육부를 땅에 뿌린대도 여한이 없소”라며 자기 몸을 내놓는다. 그 유명한 ‘고육지계(苦肉之計)’의 시작이다.

그는 군사회의가 열리자 미리 짠 대로 주유에게 지휘를 제대로 하라고 대든다. 주유는 발끈한 척하면서 그를 100대의 태형(笞刑)에 처한다. 금세 볼기가 터지고 피가 낭자해지자 다른 장수들이 더 맞으면 죽는다며 그만 때리라고 말린다. 50대를 맞고 반죽음 상태로 풀려난 그는 조조에게 투항하겠다는 편지를 보낸다. 조조는 그를 안 믿다가 결국에는 속아 넘어간다.

조조의 백만 대군은 숫자가 훨씬 적은 오나라와 촉나라(유비) 연합군에 의해 불에 타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칼 맞아 죽고 창에 찔려 죽는다. 조조도 몇 번이나 목숨이 오가는 순간을 맞는다. 적벽대전에서 황개가 제갈량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면 삼국지를 일곱 번 이상 읽은 사람들은 펄쩍 뛸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가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황개의 초상.
▲황개의 초상.
황충과 엄안은 유비의 장수들이다. 둘 다 일흔이 가까웠지만 뒷방차지로 물러나기에는 용맹과 자존심이 넘치는 노장들이었다. 조조의 장수 장합이 가맹관이라는 요충을 치러 오자 제갈량은 “장비가 아니고는 그를 당할 장수가 없다”며 걱정을 한다. 이때 황충이 뛰쳐나와 “군사(제갈량)는 어찌 나를 이리도 무시하시오. 내 비록 재주 없으나 원컨대 가서 장합의 머리를 베어 바치리다”라고 외친다.

제갈량이 “황 장군은 비록 용맹하나 너무 늙었으니 장합의 상대가 안 되오”라고 외면하자 황충은 “내 비록 늙었으나 두 팔은 아직 3석(石)의 활을 잡아당기고, 천 근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으니, 장합 따위 필부를 어찌 대적 못 한다 하시오”라고 분기탱천한다. 황충은 결국 제갈량의 승낙을 얻어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엄안과 함께 장합에 맞서 대승을 거두고 노익장을 과시한다.

이들이 나에게 어설프게라도 써보라던 자신들의 이야기는 이런 거 같았다. “우리는 솔선수범, 자기희생, 지략과 경험과 용기로 나잇값을 했다. 먼저 대접해달라고 나대지 않았으며, 주책없는 헛소리로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다. 은혜든 모욕이든 받은 것은 반드시 갚고자 했고 일신의 편안함은 돌보지 않고 목숨까지 내놓으며 내 나라와 백성들을 위했다.”

여야 4당 대표 모두 60대를 훨씬 넘긴 ‘왕년의 정치인들’이 뽑혔다. 같은 직책을 다시 맡은 사람도 있다. 이왕이면 모두 제대로 된 올드 보이가 되기를 바란다.그래야 나를 포함한 다른 올드보이들이 욕을 안 먹는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당원 게시판 논란'에 연일 파열음…與 균열 심화
  • 코스닥·나스닥, 20년간 시총 증가율 비슷했지만…지수 상승률은 ‘딴판’
  • 李 열흘만에 또 사법 리스크…두 번째 고비 넘길까
  • 성장률 적신호 속 '추경 해프닝'…건전재정 기조 흔들?
  • 민경훈, 뭉클한 결혼식 현장 공개…강호동도 울린 결혼 서약
  • [이슈Law] 연달아 터지는 ‘아트테크’ 사기 의혹…이중 구조에 주목
  • 유럽 최대 배터리사 파산 신청에…골드만삭스 9억 달러 날렸다
  •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서 “한반도 노동자,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서 노동”
  • 오늘의 상승종목

  • 11.22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3,286,000
    • -1.92%
    • 이더리움
    • 4,604,000
    • -3.05%
    • 비트코인 캐시
    • 697,000
    • -1.48%
    • 리플
    • 1,902
    • -7.4%
    • 솔라나
    • 344,500
    • -2.99%
    • 에이다
    • 1,365
    • -6.7%
    • 이오스
    • 1,131
    • +5.9%
    • 트론
    • 285
    • -4.04%
    • 스텔라루멘
    • 701
    • +0.29%
    • 비트코인에스브이
    • 93,150
    • -4.22%
    • 체인링크
    • 23,530
    • -3.72%
    • 샌드박스
    • 800
    • +35.59%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