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직접 커피를 뽑기도 하고 스스로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어놓기도 했다. 또 참모들과 상하 구분 없는 토론을 하기 위해 회의실 책상을 원탁 테이블로 바꿨다. 국방부를 방문했을 땐 전용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연해보는 파격’에 국민은 열광했다. 그만큼 우리가 권위적인 정치인과 직장 상사, 조직, 사회문화가 일상화돼서 일 것이다.
실제 공무원에게 업무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게 의전(儀典)이다. 청와대와 총리실, 외교부에는 각각 의전 담당 부서가 있다. 그래서 공직사회에서는 의전을 잘해야 승진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과도한 의전으로 공무원의 본분인 국민에 대한 봉사를 게을리하는 게 문제점으로 꼽힌다.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정치적으로는 주권자인 국민의 대표자·수임자로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는 퇴직한 모 경제부처의 A, B 국장은 전설적인 의전의 고수들이다. 물론 본인의 능력도 있었겠지만 해당 부처에서는 의전이 승진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분석한다. 한 중앙부처의 C 사무관은 출장계획을 짤 때마다 상사들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예를 들면 목적지가 미국 워싱턴이라 호텔 예약 등을 다 해놨는데 상사가 가는 김에 로스앤젤레스(LA)도 들리자고 하면 부랴부랴 호텔을 취소하고 새로 예약을 해야 한다. 식당도 어떤 곳을 원할지 몰라 2~3 곳은 예약하고 상사가 1곳을 고르면 나머지는 예약취소를 하면서 수수료를 낸다. D 사무관은 이렇게 하다 보면 출장 가서 할 업무를 챙길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모 차관급 인사는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방 업그레이드를 요구해 수행하는 공무원들이 차관급 인사의 방을 업그레이드해주고 방 하나를 취소해 같이 자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퇴직한 모 장관은 해외 출장 갈 때마다 비데를 갖고 다니게 한 사례는 유명하다.
한 전직 국무총리는 과도한 의전으로 논란을 빚었다. 서울역 KTX 플랫폼에 의전 차량을 주차하거나 버스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는 버스를 정류장에서 나가도록 했다. 경찰이 버스를 반대편 장소로 이동할 것을 요구해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반대편으로 옮기는 불편을 겪기도 했다. 서울 구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엘리베이터를 대기시켜 어르신들이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공무원들이 이런 고초를 겪으면서도 의전에 목매는 이유는 이렇게 의전을 해야 나중에 승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A국장이 대표적이다. 퇴직한 전직 고위관료까지 챙긴 의전 고수인 A 국장은 후에 이 관료가 장·차관으로 복귀한 뒤 승진에 큰 도움이 됐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무관은 “부처 출신 장관이 나오면 전에 그 장관에게 의전을 잘했던 공무원들이 주목을 받고 승진까지 한다”며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얘기도 나온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