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의 신병확보에 나선다.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사상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3일 오전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두 전직 대법관은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상급자로서 더 큰 결정 권한을 행사한 만큼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것이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데 필요하다”며 “신중한 검토 끝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어 “모두 혐의내용을 부인하고 일부 하급자와의 진술과 상당히 다른 진술을 해 구속영장 청구는 불가피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19일 박 전 대법관을 처음 소환해 조사한 뒤 고 전 대법관을 23일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두 전 대법관을 여러 차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를 진행했다.
두 전직 대법관은 대체로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해당 행위가 위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부인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이 확보한 실장급 이하 실무진의 진술과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실무진을 불러 조사하는 절차를 병행했다.
2014년 2월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 전 대법관은 일제 강제징용 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박 전 대법관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2014년 10월 공관에서 열린 회동에 참석해 일제 강제징용 소송을 미루고, 기존 판결을 뒤집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외교부와 접촉했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 일본 전범기업 측과도 수시로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피고 측 대리인과 장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직접 접촉한 정황도 포착했다.
박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고 전 대법관은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수사정보를 빼내고 영장재판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낸 혐의 등을 받는다.
2016년 문모 당시 부산고법 판사가 건설업자 정모 씨의 형사재판 정보를 누설하려 한다는 비위 첩보를 보고받고 징계하지 않은 혐의도 있다. 고 전 대법관은 당시 부산고법 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상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라’는 취지의 요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 전 대법관은 이에 대한 혐의만 인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대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전직 대법관은 사법부에 반대 의견을 내거나 특정 재판에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한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한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을 작성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더불어 검찰은 법원행정처의 재판개입 정황을 추가로 포착하고 고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에 포함했다. 박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은 158페이지, 고 전 대법관은 108페이지에 달한다.
검찰은 이번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향후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는 당연히 필요하고, 직접조사는 점점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근 새로 파악한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 등을 규명하는 대로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 시점을 가늠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