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광고로 보는 경제] 이눔들,,,우리땐 '펜팔'이라고 있었어,,,

입력 2018-12-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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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한 음악잡지 광고에 실린 펜팔 서비스 ‘민정숙펜팔’의 광고.
▲1984년 한 음악잡지 광고에 실린 펜팔 서비스 ‘민정숙펜팔’의 광고.

1984년 한 음악잡지에 실린 광고.

‘민정숙펜팔’

세상엔 사장(死藏)된 단어가 많다. ‘X세대’처럼 문화적인 이유로, 혹은 ‘창조경제’처럼 정치적인 이유로, ‘유비쿼터스’처럼 기술 발전을 이유로 없어지는 단어도 있다.

‘펜팔’도 기술 발전이 몰아낸 대표적인 단어다. 아, 물론 지금도 ‘펜팔’하는 사람들 있다. ‘X세대’ 인물이 살아있고, ‘창조경제’의 정책이 일부 남아있고, ‘유비쿼터스’는 오히려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개념이 되면서 사라진 것처럼.

다만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카톡, 페북, 스카이프가 익숙한 요즘 초·중·고생 중 ‘펜팔’을 들어본 이가 100명 중 몇 명이나 될까?

처음 들어본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펜팔’이란 ‘원래 몰랐던 이와 어떤 계기로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는 관계’를 말한다.

모르는 사람의 주소는 어떻게 알아내서 편지를 보낼까. 다 연결해주는 사람이 있다. ‘민정숙’님처럼.

▲펜팔은 대체 어떤 서비스이길래 이렇게나 ‘여학생’이란 단어가 많은 걸까?
▲펜팔은 대체 어떤 서비스이길래 이렇게나 ‘여학생’이란 단어가 많은 걸까?

◇여학생…여학생을 만나고 싶다!

눈에 띄는 멘트 몇 개 꼽아보자. ‘좋은 이성친구를 사귈 수 있는 지름길’, ‘여학생의 사진이 많은 곳’, ‘밝고 깜찍한 모습의 여학생과 정다운 펜팔교제’, ‘여학생이 손수 써서 보내온 예쁜 사연’, ‘여학생은 사진을 꼭 동봉해서’… 아니 무슨 ‘여학생’이란 단어가 이렇게 많아?

왜겠는가. 생각하고 계시는 바로 그 이유가 맞다. ‘미팅(meeting)’은 원래 ‘만남’이란 뜻이다. 근데 우리는 이 단어를(물론 다른 용례도 있기야 하다만) ‘성비를 맞춘 다수의 남녀가 연애 등을 목적으로 만나는 모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원래 인간의 만남 가장 밑바닥에는 사랑에의 추구가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성애, 동성애, 모성애, 동료애…. 하다못해 멀리 있는 새 친구를 낭만적인 손편지를 통해 새로 사귀는 만남이라니. 사랑을 떠올리는 게 정말이지 자연스럽다!

▲왜 ‘다른분은 절대 모르도록 특수한 방법’으로 ‘살며시’ 소개해 주는 걸까? 건전하다고 유달리 강조하는 건 또 왜일까?
▲왜 ‘다른분은 절대 모르도록 특수한 방법’으로 ‘살며시’ 소개해 주는 걸까? 건전하다고 유달리 강조하는 건 또 왜일까?

…라고 이해해주려 해도 이 광고는 좀 아름답지가 못하다. 다시 말해 너무 ‘노골적’이다. 만나면 만나는 거지, ‘다른 분은 절대 모르도록 특수한 방법으로 살며시 소개해’ 드려야 할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특수한 방법이란 건 또 뭐고).

‘청소년 선도대책의 일환’으로써 ‘건전한 펜팔 교제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수상하다. 왠지 노력하지 않으면 펜팔이 ‘건전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만 같다.

그래, 건전하다 치자. 어디 한 번 ‘민정숙펜팔’이 말하는 ‘서로에게 빛과 힘과 용기를 주며, 상호인격과 정신이 성장하고 우정으로 가꾸어지는 바람직한 교제’가 이뤄지는 펜팔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광고를 요모조모 훑어보자.

▲펜팔 신청카드. 일단 이거 말고도 본인의 흑백 혹은 컬러 사진을 보내야 한다.
▲펜팔 신청카드. 일단 이거 말고도 본인의 흑백 혹은 컬러 사진을 보내야 한다.

◇얼굴은? 키는? 나이는? 성격은? 사는 곳은?

일단 여학생은 신청카드와 ‘사진’을 꼭 동봉해서 보내주셔야 펜팔친구를 신속하게 소개해준다고 한다. 사진 없는 여학생은 소개 안 해주겠다고 한 건 아니지만, 광고 곳곳에 ‘여학생’과 ‘사진’을 강조하는 문구가 세 차례나 등장한다. 사실상 사진 없는 여학생은 소개 못 받는 것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2018년 현재는 ‘서로에게 빛과 힘과 용기를 주는’ 친구는 잘 공감해주고 좋은 조언을 해주는 친구를 일컫는다. 근데 당시엔 사진 속 얼굴이 ‘깜찍한’ 친구를 의미했던 것 같다. 본인의 신장과 원하는 상대방 신장도 체크 하는 것을 볼 때, 당시엔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능력이 신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상 연령은 14~19세, 학년으로는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3학년까지로 한정됐다. ‘국민학생’은 건전한 교제를 하긴 너무 어린 나이고, 대학생 언니·오빠가 되면 건전한 교제 능력을 충분히 함양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교제 목적에는 △펜벗 △이성친구 △취미교환 △가까운곳 △남매 △독후감교류 등이 있다. 취미교환과 독후감교류는 상대적으로 매우 건전해 보인다. 이성친구…부터는 조금 그렇지만, ‘가까운곳’은 뭘까? 괜시리 호기심을 자극한다.

▲현재 구글플레이에서 운영중인 랜덤채팅(사진 위)과 소개팅(아래) 앱. 펜팔은 1980년의 랜덤채팅, 소개팅 앱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구글플레이에서 운영중인 랜덤채팅(사진 위)과 소개팅(아래) 앱. 펜팔은 1980년의 랜덤채팅, 소개팅 앱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펜팔’의 계보는 랜덤채팅으로...기술은 죽어도 문화는 숨쉰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다. 영상매체의 등장이 라디오에 나오던 가수들을 사장시켰다는 내용이다. 정확히 말하면 비디오가 사장시킨 것은 어디까지나 라디오다. 가수들은 비디오에 적응해 갔다. 계산기가 발명되며 주판은 사라졌지만, 산수 자체는 남은 것처럼. 펜팔 역시 없어졌다. 하지만 텍스트와 사진을 매개체로 한 청춘남녀의 만남은 다른 형태로 바뀌어 지금도 남아있다.

‘민정숙펜팔’로 본 펜팔은 지금의 랜덤채팅 앱과 매우 흡사하다. 꼭 성공적으로 이성친구를 만들어 주겠다는 세일즈 포인트, 만남이 성사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사진·연령·사는 곳·키· 등의 신상정보를 기입해야 한다는 것이 그렇다. 당시의 펜팔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교류하는 랜덤채팅 앱이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겠다.

비슷한 유형의 서비스로 소개팅 앱도 많다. 랜덤채팅 앱이던 소개팅 앱이던 돈이 되니까 개발비와 운영비를 감수하고 서비스되고 있다. 1980년대의 ‘민정숙 펜팔’도 돈이 많이 됐을까?

정황상 상당한 돈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펜팔 친구를 소개받으려면 신청카드를 ‘서울시 중구 태평로 1가 29-2 국제빌딩’에 위치한 사무실에 보내야 한다. 지금 이곳엔 서울시청 바로 옆 뉴국제호텔이 있고, 다시 말해 광화문 한복판이다. 지금도 광화문은 여의도, 강남과 함께 3대 업무지구지만 이때는 광화문의 위상이 훨씬 높았던 1984년이다. 펜팔 서비스 운영으로 1980년대 광화문의 살인적인 임대료가 감당 가능했었던 것 같다.

언젠간 랜덤채팅 앱도 펜팔처럼 기술 발전에 따라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출 것이다. 하지만 변화된 기술 형태로 청춘 남녀들의 만남을 이어주려는 ‘민정숙’님들은 인류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존속할 것만 같다.

‘민정숙펜팔’의 만남 성사율과 고객 만족도에 대해서는 현재 알 길이 없다. 이에 관해선 ‘민정숙펜팔’을 통해 아롱아롱한 한 때의 추억을 가지셨던 분들의 제보를 받고 있다. 작성하신 제보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 62길 1 이투데이빌딩 7층 뉴스랩부 김정웅 기자 앞으로 우표 7매 동봉…해 주셔도 받을 수 있긴 한데, 그냥 아래의 기자 메일 주소로 보내주셔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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