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조의 생각] 혁신성장: 경직된 이념과 규제를 버려야 한다.

입력 2019-02-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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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교수

북미정상회담이 블랙홀처럼 우리들의 관심을 집어 삼키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성공가능성이 있고, 성공한다면 노벨평화상을 수여할 만한 역사적 성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번 정상회담도 양국 국민들을 모두 만족시킬 만한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희망과 실망 그리고 찬반의 뜨거운 논란이 있겠지만, 정상회담이 끝나고 냉정한 현실로 돌아오면 결국 다시 먹고사는 문제가 우리를 답답하게 만들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외쳤지만 거의 2년이 다 지나가도록 아무런 성과도 없다. 오히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청년실업은 더 악화하고 영세 자영업자의 폐업은 급증했다. 최근에는 혁신성장을 더 강조하면서 약간의 태도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이재웅 혁신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좌절감을 솔직히 드러내고 사퇴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회의는 하는 것 같은데 혁신성장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왜 혁신성장의 구호가 겉도는지, 문 대통령은 최근 벤처기업 간담회에서 벤처기업인들의 쓴소리를 들었다. 쿠팡 대표는 경직된 규제의 심각한 문제를 지적했고,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주 52시간 근무가 또 하나의 불합리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근무조건은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대기업에 별다른 부담 없는 조건이겠지만, 신규 창업한 벤처기업과 의욕적인 종업원들에게는 오히려 이상하고 불합리한 규제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벤처기업은 국내 대기업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실리콘 밸리의 벤처기업과 경쟁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실리콘 밸리에서 새로 창업한 벤처기업들에도 9시간 주5일 근무와 같은 전통적인 근무조건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대신 주 7일 하루 24시간 일정한 프로젝트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집중적으로 일한다. 벤처기업의 창업 경영인뿐만 아니라 종업원들도 모두 각자의 효율적 생활패턴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6개월이든 1년이든 자신의 업무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집중적으로 일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주52시간제와 같은 경직된 근로조건 대신에 프로젝트 마감기일과 목표 달성이 훨씬 더 중요한 현실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혁신성장의 모델로 간주되는 실리콘밸리의 성공에는 그 지역 대학과 벤처기업의 협력이 중요한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구글은 20여 년 전 스탠퍼드 공대생 2명이 벤처창업해 글로벌 기업으로 된 대표적 성공사례의 하나다. 스탠퍼드 공대생 로렌스 페이지(Lawrence E.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M. Brin)은 지도교수가 수행하고 있던 첨단국방기술연구처(DARPA)로부터 받은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개발한 웹페이지 검색방법을 토대로 구글을 창업했다. 미국 연방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되 대학의 연구개발에 간섭하지 않고 벤처 창업에 불합리한 규제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실리콘밸리 혁신성장의 핵심 배경이다.

미국에서 혁신성장에 있어서 대학의 역할이 강조된 것은 19세기 중반 남북전쟁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거대한 식민제국을 건설한 영국과 비교해보면 미국은 후진국에 불과했다. 영국의 성공한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대학의 농업, 공업 및 군사 관련 기술혁신을 지원하기 위해서, 링컨 대통령은 각 주정부에 3672만 평(3만 에이커)의 연방토지를 교부금으로 제공한다. 소위 토지교부금법의 제정은 남북전쟁 전후로 미국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대학의 역할에 관한 커다란 인식변화가 있었음을 반영한 것이다.

대학이 학문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뿐만아니라 기술혁신을 통해 경제적 부를 창출하고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대학이 순수이론뿐만 아니라 시장과 산업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응용학문을 통해서 혁신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은 결국 미국에서 제2차 산업혁명을 시작하고 성공시킨 계기가 되었다. 토지교부금 제공에 의해 대학을 혁신성장의 주역으로 끌어들이는데, 이념논쟁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었다. 혁신성장의 목표를 위해서는 내란상태에 있었던 남부지역의 대학들도 차별할 이유가 없었다. 수천만 평의 연방토지를 교부금으로 받은 주정부는 주로 주립대학을 수혜대학으로 지정해 지원하고 불필요한 간섭이나 규제는 하지 않았다.

미국이 남북전쟁 후 제2차 산업혁명에 성공하고 세계대전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제3차 산업혁명에 성공한 것은 정부가 불합리한 규제 없이 돈과 자유를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혁신성장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혁신에 필요한 자유와 기업가정신의 존중이다. 혁신성장은 진보이념의 실천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경직된 이념으로 불합리한 규제를 새로 만들어낸다면 혁신성장의 성공은 점점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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