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중견 화학기업 대한유화그룹의 주력 계열사가 오너 소유 개인 회사와의 거래를 늘리고 있다. 재계가 내부 일감 해소 행보를 보이는 것과는 정반대다. 오너 일가는 안정된 제품 매입과 판매를 통해 1조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매년 수십억 원 이상의 배당도 쏠쏠히 챙기고 있다.
대한유화그룹은 1970년 설립된 대한유화공업(현 대한유화)이 모태다. 2017년 기준 그룹 자산총계는 2조7925억 원으로, 4개의 국내 계열사가 있다. 그룹 주력사인 대한유화가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로, 플라스틱 원료인 폴리프로필렌(PP) 및 고밀도폴리에틸렌(HDPE)을 생산한다.
현재 고 이정호 명예회장의 4남인 이순규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 회장은 지주회사 케이피아이씨코포레이션(이하 KPIC)을 통해 대한유화 등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KPIC는 이 회장과 그의 부인 김미현 씨가 각각 93.35%, 6.65%씩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KPIC는 대한유화의 단일 최대주주(지분율 31.01%)다. 이 밖에 이 회장(2.55%)과 자녀 등 친인척도 대한유화 지분 9.18%를 갖고 있다. 즉 ‘이순규-KPIC-대한유화’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인 셈이다.
이러한 지배구조 체제는 2013년 KPIC와 유니펩의 합병으로 완성됐다. KPIC 이전 대한유화의 지주사였던 유니펩은 2001년 이 명예회장으로부터 20만 주를 증여받았다. 이 명예회장은 2006년에도 유니펩과 KPIC에 각각 64만 주, 30만 주씩 증여했다. 또 유니펩은 그해 74만여 주를 장외매수하며 최대 지분을 갖게 됐다. 이후 2010년 대한유화가 공개 매수 및 주식 소각으로 전체 주식 수가 줄면서 지분율이 올라갔고 2013년 KPIC가 유니펩을 흡수했다.
대한유화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논란의 정점에는 KPIC가 있다. KPIC의 사업구조는 대한유화가 생산한 제품을 매입해 마루베니와 인터켐, 미쓰비시 등 해외 고객에게 판매하는 것이 전부다. 별도의 생산이나 가공 과정도 없어 KPIC의 임직원 수는 2017년 기준 60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한 해 거두는 매출은 1조 원을 훌쩍 넘긴다.
2013년 이전까지만 해도 매출은 6000억~7000억 원대에 머물렀지만 대한유화 실적 호조 흐름을 타고 이듬해부터 1조 원을 돌파했다. KPIC와 대한유화의 거래 규모는 2014년 9624억 원에서 2017년 8524억 원으로 소폭 줄었다. 그러나 작년에는 3분기 기준으로 이미 1조 원을 넘어서면서, KPIC는 작년에 최대 실적을 달성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안정적 제품 매입과 판매로 최근 4년간 60억~100억 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으로 매년 배당을 실시하고 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연간 배당 총액은 161억 원으로, 이는 고스란히 이 회장 부부의 수입이 됐다. 이에 경제개혁연구소는 KPIC에 대해 “대한유화 내부에서 담당할 수도 있는 업무를 지배주주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회사를 통해 수행하는 회사로, 회사 기회유용으로 판단된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