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서 의류 브랜드의 위탁을 받아 물건을 판매하는 판매사원들이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브랜드 본사와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27일 관련 업계에 의하면 백화점 위탁 판매원 최모 씨 등 40여 명은 최근 의류 브랜드 ‘노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영원아웃도어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냈다.
백화점의 위탁 판매사원들은 백화점과 의류 브랜드 어느 곳에도 고용되지 않고 매출에 따라 수수료를 가져가는 개인사업자 신분이다. 근로자가 아닌 탓에 동일 브랜드에서 수년간 일해도 퇴직금조차 받을 수 없다. 이에 판매원들은 브랜드 본사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해 근로자성을 인정받으려 한다.
하지만 이들이 제기한 소송에 법원의 판결은 엇갈리고 있다.
백화점 위탁 판매원 최모 씨 등 35명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 소송은 지난해 9월 1심에서 패소한 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고, 김모 씨 등 12명이 지난해 코오롱인더스트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 소송은 1심 승소했지만 회사가 항소해 2심에 들어갔다. 1심에서 패소한 뒤 퇴직금 지급 판결을 받은 코오롱 인더스트리 측은 “판결에서 패소했지만 위탁 판매원과의 고용 관계는 변화가 없다”며 “종전에 개인 사업자 신분으로 계약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브랜드 본사와 고용 관계가 아닌,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계약 관계를 형성한 판매원들은 본사의 불합리한 계약 조건을 거절하기 어렵다. 지난달 31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르까프·케이스위스·머렐 등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를 유통하는 화승의 경우 위탁판매원들과 맺은 불합리한 계약이 논란이 됐다. 화승이 판매원에게 월급을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어 월급을 어음으로 받은 판매원들이 회사 빚을 떠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백화점 판매원이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브랜드 본사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관행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고정비를 줄이려는 패션 브랜드들이 자구책으로 고용 대신 계약을 선택한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용 부담을 줄이려다 보니 이들을 고용하지 않고 개인 사업자 신분으로 둔 채 계약을 맺었다”며 “국내 패션업계는 여전히 사업이 부진해 판매원들을 회사가 고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백화점 판매원을 브랜드 본사에서 고용하라고만 해선 안 된다. 백화점도 책임이 있다”며 “다른 나라에서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만큼 백화점이 판매원을 고용하는 식이다. 브랜드는 백화점에 수수료도 내야 하는데, 판매원까지 직접 고용하게 되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